들판에 서서

by 일뤼미나시옹

들판에 서서



들판은 오작동을 일으킨 적 있는가

숙주나물이 버려진 참외 넝쿨 더미에서 나고

철삿줄에 꼬인 장수매화나무에서 풍뎅이가

태어나는 오작동 말이다.


들판은 리듬이거나 격랑인 자기 구원을 빌어본 적 있는가

버림받은 느낌의 걸음 걷는 산책자에게 더 버림받은 느낌을 준 적 없는가

늦가을에 애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빗물 범람 때 ‘빌어먹을 동네’ 격류 따라 타향살이하러 떠난 적은 없는가


들판은 제자리 먼 여행만 하고 있는가

들 일 하는 이의 그 나물에 그 밥은 들판에게도 그 나물에 그 밥인가

수틀리면 사막으로 치환하는 치유력은 있는가


새들과 태양과 떠돌이 개를 쫓아낸 적은 없는가

들판에게도 우울증이 필요하고 광증의 헛웃음이 피는가

혹여, 소테르담의 가을 호숫가로 이주하는

백만 년 계획인가


keyword
일뤼미나시옹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예술가 프로필
팔로워 3,368
작가의 이전글살구나무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