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리듬
회색의 아침이다. 햇살도 없다. 통유리 창에 얼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고친 그녀는 도로의 한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다. 그리곤 이내 부츠를 신은 두 다리가 살짝 살짝 일정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몸은 회사버스를 기다리느라 뻣뻣이 추위를 견디고 있지만, 그녀의 두 다리는 전날 밤의 회식 자리이거나 나이트클럽에서의 열기를 되새기고 있다. 일정한 리듬의 춤을 연상시키는 동작은 사뭇 부드럽고 그 짧고 간결한 동작은 근래에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춤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서로의 몸을 부비며 추는 춤. 낯 뜨거워 바라볼 수 없는 속칭 '부비부비'라는 춤이 분명하다. 부츠 신은 두 다리는 웅크린 상체를 대신해서 출근시간의 무거운 몸을 잊고 있다. 햇살이 희미하게 동쪽 하늘에서 비쳐오고 이윽고 그녀의 다리는 동작을 멈춘다. 통근버스 문이 열리고 그녀의 다리가 버스에 오른다. 이제 퇴근시간까지 그녀의 두 다리는 전날의 춤동작을 잃어버릴 것이다. 휴대폰 조립라인 앞에 앉아 기계처럼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되풀이 하고 마침내 두 팔이 기계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몸이 될 때까지 일하고서야 그녀의 일과가 끝날 것이다. 몸은 그때까지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몸은 그때까지 기계가 되었다. 퇴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두 다리는 다시 아침의 그 춤동작을 기억해 낼 것이다. 몸에는 다시 어떤 리듬이 들어차고 휴대폰을 조립하던 두 팔도 웅크렸던 상체도 그제야 조금씩 다리로부터 올라온 어떤 리듬 에 맞춰 끄덕끄덕 움직일 수 있으리라.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끄덕거리는 수많은 다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