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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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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30. 2023

창가에서 - 잘려나간 부위


 잘려나간 부위

 

 기도하며 등을 보이는 그는 젊은 시절에 나병이 찾아왔다. 그때, 그는 사귀던 약혼녀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고는 떠나라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철길 위에 자신의 팔 하나를 올려놓고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 찾아와 자신도 병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아카시아 울창한 동네. 나환자 정착촌에서 양계업을 하며 살았다. 아들은 자랐고 양계업은 번창했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는 죽었고, 성인이 된 외아들도 겨울 밤 자동차 과속으로 죽었다. 나의 기억에 그의 아들은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약간은 불량스러워 보였지만 부모로부터 오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다. 어쩌면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더 밝게 살았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 청년의 연애는 어땠을까. 과속을 하게 만든 연애. 기필코 실패하고 말 연애.

 지금 기도하는 저 손은 잔가지 모두 잘려나간 부위처럼 손가락 모두 빠지고 없다. 잃어버린 아들과 부인의 빈자리처럼 손바닥뿐인 손으로 기도하고 있다. 미사 끝나고 한참을 기도하고 있다. 아무도 흔들어 깨울 수 없는 기도. 이 현실에서 무엇을 더 바라지도 않을 기도. 봄 물 올라 잘린 나무에 새순이 돋아 오르겠지만, 그의 빠져버린 손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손바닥뿐인 손으로 만지던 아침 계란의 따뜻한 온기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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