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의 일부이든
해질녘 파계사 올라가는 길. 파계사 올라가는 길은 매표소에서부터 느닷없이 가파르다. 적당히 숨을 몰아쉬게 하는 길은 미끈하게 절에까지 닿아 있다. 거꾸로 절에서 내려오는 방향에서 보면 이 길은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같다. 나는 가끔씩 이 길을 걷곤 한다. 길의 양편 나무들과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절까지 가는 시간, 잿빛 기운이 몸에 번져 오는 때. 이럴 때 내 몸은 유영하는 고래처럼 무겁고 커다랗게 느껴진다. 부드럽고 느릿한 고래의 유영처럼 절에 닿아 물 한 됫박 마시고 내려오는 길. 적묵당 지붕과 진이 빠져버린 흰 기둥들 바라보고 등 뒤 저녁 예불 소리를 남기며 돌아오는 길. 소리들이 등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어스름 길. 이런 산책은 시집 한 권 읽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삶의 일부가 이런 길에 버려져도 괜찮은 것이다. 이런 길에서 삶의 일부를 식물들에게 빼앗기거나 저녁 해에게, 구름들에게 강탈당해도, 공양해도 괜찮은 것이다. 마음의 일부를 물에 흘려보내듯이, 삶의 일부가 사라지는 듯 한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