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동물처럼
소낙비 퍼붓는 날 큰 물 흐르는 냇가, 잎 넓은 나무 아래 차를 세워두고 잠에 빠져든다. 자동차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잠을 청한다. 뻘물 흘러가는 광경 오랫동안 바라보다 잠을 청한다. 퇴행적으로 몸을 웅크린 쓸쓸한 동물처럼 빗방울 소리가 만들어주는 마음의 고요에 귀 기울이며 잠을 잔다. 잠든 동안 내 몸에 체적 된 피곤한 기운들이 비릿한 이파리 몇 장으로 피었다 사라지거나, 내 꿈의 일부가 나비로 환생해 날아가는 잠을 잔다. 조금만 눈 붙이고 일어나려던 것이 얼마나 잤는가. 얼굴엔 개기름이 끼어 있고, 비 그친 뒤 쏟아지는 햇살 받는 나무들 빗방울 털어내는 키 큰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먼데를 바라보고, 내 몸에도 자고 일어난 아이 같은 쓸쓸함이 베어 있어, 나는 ‘허방’ 같이 뚫린 마음의 공허를 껴안고 한동안 물길 따라 걸어간다. 휘청휘청 잠 덜 깬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