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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Jan 04. 2019

슬퍼하는 노인

빈센트 반 고흐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세사르 바예호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내가 세사르 바예호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는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이 잘렸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봅니다. 그리고 그의 배고픔이 나의 고통과는 먼 것임을 봅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굶게 된다면, 적어도 내 무덤에서는 억새풀이라도 하나 자라겠지요. 사랑도 마찬가지 입니다. 샘(泉)도 없고 닳지도 않는 나의 피에 비하면 그의 피는 얼마나 풍료로운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부모나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부모라서 자식이라서 겪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背)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에 두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1890 Van Gogh 

Old man grieving

Kröller-Müller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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