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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1. 2019

아메데오



어디서 보았던가. 가을바람  불던 오후의 어느 소도시. 몇 날을 굶었는지  허기에 눈이 뻐끔한 개가 서성거리며 사라지던  골목  모퉁이. 모퉁이라는 말에 꼭 어울리는 이 여인을 어디서 보았던가. 가을 햇살에 발그레한 안색과 며칠 감지 않았지만 잘 정돈된 가르마의 검은 생머릿결. 이 세계에 대한 무한 겸손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다소곳이 맞잡은 두 손과 찌든 때가 스민 하얀 칼라에 바랜 검은 옷과 구두의 하녀. 무거워 보이는 검은 옷은  오래된 기억 하나를 잊어버리기 싫어 바래고 바래도록 입고 다니는  어떤 징표 같기도  하고, 걸을 때마다 바랜 옷에서 비올라나, 첼로 소나타가  무장무장 풀려  나올 듯한데. 아,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심연을 자극하는 에메랄드빛 눈에 내 눈을 하는데. 그녀의 눈은 세상의 희로애락을 모두 체험해버린 탓에 얻은 눈인 듯하고, 설거지며  청소 요리에 온갖 잡일로 평생  살아야 하는 식모살이임에도, 세상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눈빛이며, 만 미터 심해를 들여다본 푸른 충혈의  눈으로 나도 세상의 한 모퉁이에 그렇게 서 있고 싶은데,  퍼런 페인트 칠이 바래고 일어나는 허름한 저 모퉁이는,  저의 가슴에 꼭 맞는  몸집의 여인을  다소곳이 세워 놓은, 세상의 성소 같은 모퉁이는, 우리들 영혼을 정화시키는 무한 깊이의 푸른 눈  앞에 무한 고백. 무한 고해를 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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