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행복한 잠입니다. 신도 깨울 수 없는 잠입니다. 저녁 해가 뉘엿 해질 때까지 깨지 않는 잠입니다. 가을걷이를 하고 점심밥을 먹은 직후의 식곤증이 몰려온 잠입니다. 낱가리를 쟁여 놓은 벌판에 햇살이 황금빛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노동을 한 후에 몰려오는 피로는 건강한 피로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이런 행복이 없습니다. 근육이 당기고 늑골이 뻐근한 행복한 노동 후의 피로는 건강한 피로입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가혹한 노동만 있거나 아니면 노동이 없습니다. 내 아름다운 시골 들판도 지금은 도시에서 몰려온 물류창고들이 논 밭을 잠식해버렸습니다. 이젠 밤의 무논에서 합창하던 개구리울음도 해마다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낱가리에 등을 맡기고 밀짚으로 햇빛을 가린 남자의 강인한 육체는 진정 노동으로 만들어진 육체입니다. 커다란 발과 손, 벌어진 가슴과 근육. 선한 얼굴 표정. 남자의 안 허벅지를 베개 삼은 여인도 풍부한 육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굵은 종아리와 풍부한 유방과 살집. 그리고 하늘을 향한 잠든 얼굴에 스민 평화로움. 내가 훔치고 싶은 육체이며. 잠이고 노동입니다. 어디 한 곳 부족함이 없는 대지의 노동에서 얻은 육체의 풍경이며, 저 잠이 곧 가을 추수와 같습니다. 헛기침이라도 해서 그들 잠을 깨워야 할까요? 아님, 천국 같은 저 잠의 풍경을 우리 것으로 삼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