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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2. 2019

정물

조지오 모란디니


부스스해지는 것이다. 각각의 사물들은 그들  존재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가득 채워졌지만 동시에 텅 비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옹기골의 아버지 친구들 진흙 묻은 손으로 담배 피며 햇살 쬐던  찰흙의 작업장 벽에 기대 있듯, 부스스해지는 것이다. 시간이 오고 햇살이 오고 먼지가 쌓이고 침묵의 옷을 입으면, 사람도 정물이 되고 사물도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간이 바로 부스스해지는 것이다. 소박한 사물들은 일상의 자리에서  추상의 자리로 존재의 이동을 하고, 사물을 둘러쌌던 시간과 빛도 오래 입어 색 바랜 막노동 일복처럼 부스스해지는 것이다. 70년 대 시골 농가 그을음 많은 부엌의 나무 선반 위에 올려진 가재도구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그릇들도 사람도  서로를 부스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래 바라보았지만 바라본 시간이 없고 , 지금 바라보고 있지만, 뒤늦은 오후가 새벽에 찾아온 듯. 다만  부스스해지는 것이다.  ㅡ조르조 모란디, 정물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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