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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17. 2019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Bertha Horta




예술이 주는 행복


예술가들은 작업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하는 고통을 넘어서야 작업에 임한다.


자신의 작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예술작업의 주기에서 반복되는 정상적이며 건강한 일반현상이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예술 작품을 장조하려는 욕망은 예술가 자신의 일부가 된다. 인생의 예술은 일단 뒤엉키고 나면쉽게 떼어놓기 힘들어진다. 스트라빈스키의 손은 고령에도 여전히 오선지를 오갔고, 피카소의 붓은 죽을 때가지 꺾이지 않았다.


예술가의 두려움은 뒤를 돌아볼 때나 앞을 내다볼 때만 생긴다.


허먼 멜빌   행에 " 이름은 이스마엘이다" 라고 쓰는 순간, <모비딕> 이야기는 수많은 다른 이야기들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다.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그토록 힘든 것은 그것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그 문장에서 자연히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일단 첫 문장을 쓰면, 다른 선택은 사라져버린다.


가구 디지이너 찰스 임스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1프로만 구상에 쓰여지며,나머지 99프로는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구상을 지켜나가는 데 쓰인다고 말한 바 있다.


머리 속의 시는 언제나 완벽하다. 문제는 그것을 글로 옮기려고 할 때 시작된다. 예술 창조에서 중요한 것은 머리 속의 구상과 재료의 성질을 현실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다. 아예 필요한 지식은 재료가 어떻게 반응하고 또 그 반응에 따라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 작업하는 동안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들을 살핌으로써 얻어진다. 그처럼 실질적이고 평범한 변화들이 중요하다.


예술은 끝을 알지 못하면서 문장을 처음 시작하는 것과 같다. 위험은 불 보듯 환하다.


소설가들은 줄거리 개요를 만드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진행될 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그들 자신도 독자들처럼 놀라게 되기 때문이다.


로렌스 듀렐은 예술창작 과정을 땅 위에 말뚝을 박는 것에 비유했다. 말뚝 하나를 박고, 50미터 앞에 또 하나를 박으면 방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술 창조는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때 불확실성은 예술창조 욕구의 본질을 이루며, 불가피하고 불가분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안셀 애덤스는 자신이 모든 장면들이 정확히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마비상태를 초래하는 것이다.


"수학적 법칙이 현실을 반영하는 한,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역으로 수학적 구조가 확실하다면, 그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앤서니 트롤포프는 규칙적으로 하루에 7페이지씩, 한 주에 49페이지의 원고를 작성했으며, 그 틀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아침에 소설 하나를 완성했어도 새 종이에 다음 책의 제목을 적고, 하루 양을 다 채울 때까지 서 내려갔다.


얻고자 하는 가르침은 자신의 작품 안에 들어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주관이나, 요구, 바람이나 희망 없이 자신의 작품을 직시하기만 하면 된다. 어떠한 감정적인 기대도 품지 않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품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가만히 듣기만 하라. 훌륭한 어머니가 아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듯이.


작가가 게으르면 작품도 게을러지고, 작가가 열의를 잃으면 작품도 시들해지며, 작가가 주저하면 작품도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바라보고만 있다. 반면 작가가 마음만 먹으면 작품은 불길처럼 타오른다.


일이 엉켜서 잘 나가지 않으면 의식적으로 조심스럽게 되돌아서서, 작업이 잘 된다고 느꼈던 때의 습관이나 방식을 되살리는 것이 좋다. 자신이 빠져나왔던 공간으로 돌아가면, 작품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극단적인 경쟁은 타인과의 불필요한 (종종 자기 파괴적이기도 한) 비교에 빠지게 한다. W.C. 필즈는 채플린의 이름만 나와도 격해진곤 했으며, 밀턴은 섹스피어와의 계속적인 비교 속에서 우울한 일생을 보냈다. 살리에르 또한 자신의 곡을 모차르트와 비교할 때마다 정신 이상이 되곤 했다. 자신이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분노와 괴로움을 낳으며, 자신이 동료 예술가처럼 훌륭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자신을 우울하게 한다.


자아의식이 외부세계가 정해 놓은 등급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상위등급의 작품을 만들려는 생각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자신의 작품이 훌륭하다고 평가하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위한을 얻는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먼 과거의 추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글로 쓰면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왜 글을 쓰지 않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


"가끔 나는 내 의자에 반해서 그림을 그린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자연에 대한 정직한 느낌이 아닐까? 이 감정은 너무나 강렬해서, 마치 연설이나 편지에 씌어 있는 단어처럼 연속적이고 일관된 느낌으로 찾아들며, 그럴 때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열중하게 된다. (고흐)


노만 매일러는 "영감이 없는 시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시간에 섹스를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희망도 없이, 한 사람의 미래를 더럽히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감정이 빠진 글을 쓰지 않다면, 그 해결책은 영감이 없을 때 글쓰기를 자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이 왔을 때 무조건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종이나 노트북을 가까이 두어야 하며, 누가 당신을 부르든, 이메일이 도착하든, 다 무시해야 한다. 또한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영감을 불러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덜그럭거리며 활주로를 지나가야 하는 법이다.


헝가리 작곡가 조르지 쿠르탁은 작곡에 있어서 '마비'와 같았던 휴지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뱃속에서 언제 나올지는 아이가 정하는 것이지, 엄마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주의자의 내적 비판을 감소지키는 자기 치유법으로는 브레인스토밍, 자부심 고취, 시각화 등이 있다.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내적 비판은 의시적으로 억압된다. 그것의 목적은 질을 따지지 않고 되록 많은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 있을 뿐, 옥석을 구별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다. 비슷한 기법으로 '자유롭게 쓰기가 있는데, 여기서는 주제와 관련 없는 내용도 허락된다. 그 목적은 글 쓰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고, 종이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


"환자는 자유연상을 통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연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된다." (피렌체)


완벽주의의와 싸우기 위한 또 다른 접근법은 '내면의 어린아이'와 만나는 방법이다. '내면의 어린아이'란 다름 아닌 정신분석가들이 말하는 '이드'이다. '내면의 어린아이'는 이상적인 아이로서 놀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다.


전날 썼던 글을 교정하라. 언제나 쉬운 부분에서 글쓰기를 멈춰라. 나중에 완전히 자신의 글이 될 수 있도록 정확한 개요를 가지고 시작하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글을 써라. 너무 성급하게 수정하지 말라.


 "글 쓰는 시기와 쓰지 않는 시기가 맞물려 반복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은 창의적 경험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본능적인 리듬이다. 심장의 수축과 확장이 분리될 수 없듯이, 창의적인 경험도 수축과 확장을 반복한다. " (빅토리아 넬슨)


"작기가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마치 강아지가 잔디 위에 앉아 쉬기 전에, 주변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살펴보는 것과 같다. (제임스넬 서버)


"하루 종일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한 단어라도 찾기 위해 애처로운 두뇌를 억지로 짜내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른다. (플로베르)


6개월간 긴 유유부단함과 무기력에 시달리던 윌리암 제임스는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내 자유의지의 첫 번째 행위는 자유의지를 믿는 일이다."


미루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를 불러내려고 노력하기 보다, 자유의지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지는 편이 낫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처음 외쳤던 곳이 목욕탕이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처럼 영감이 지나갈 때 놓치지 않도록, 항상 욕실에 필기도구를 준비하라!


"글쓰기는 쉽다. 이마에 피가 맺힐 때까지 빈 종이를 노려보고 있기만 하면 된다."(진 파울라) 그러나 대부분 빈 종이를 마주하는 고통스런 순간을 견디기보다, 긴급한 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미룰 것이다.


그 원인이 부모로부터의 압력 같은 외부적 요인이든, 아니면 명성에 대한 헛된 욕망 같은 내부적 요인이든, 과도한 동기는 역설적으로 블록 현상을 일으킨다.


강한 내적 동기를 가진 사람은 하이퍼그라피아에, 강한 외적 동기를 가진 사람은 블록 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신이 완벽주의자라면, 질에 대한 평가보다는 양에 대한 평가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블록 현상에 빠진 작가들은 자기혐오가 심하기 때문에, 자신이 쓴 글의 수준에 점수를 매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웅졸 한지 확인하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부정적인 점수를 주기 쉬운 이런 방법은 전혀 도움이 도지 않는다. 반면에. 양적인 평가는 글쓰기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객햅ㄹ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째서 나의 뮤즈는 불행할 때만 내게 말 거는 것일까? 내가 불행할 때만 신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기쁘게 살며 글쓰기를 무시할 때, 뮤즈는 낙담하는 것일까? (스티브 스미스)


"지치고 힘들 때, 영혼이 마치 종이처럼 가벼워짐을 느낄 때, 나는 억지로 글을 쓴다. ...어쨌든 글쓰기는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조이스 캐롤 오이츠)


"글을 쓰지 않으면 기분이 엉망진창이 된다." (헤밍웨이)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하면, 불안감에 안절부절 못하며 고문을 당하는 듯하다." (티나 켈리)


"시인이란 남모를 고통으로 심장이 찢긴 사람이다. 그의 울음이 입을 통해 나올 때면,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린다.(키에르 케고르)


"예술가는 악마에게 이끌리는 존재이다.(포크너)


"나는 눈을 감기 위해 글을 쓴다" (카프카)


"소극적 능력이란 사실이나 이유를 추구하지 않고,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을 견딜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의 지성을 연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물에 대해 어떤 간섭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열어 모든 생각이 마음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키이츠)


"창조란 이전에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던 사물들 사이의 유사점을 깨닫는 것이다. (콜린 마틴테일)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천국으로 들어가는 듯이 느껴졌다.내가 모르는 어떤 힘이, 인간의 정상적인 삶과는 다른 어떤 것이 나를 몰아가는 듯했다. (마티스)


"영감이란 언어의 소리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을 무의식, 우연, 계시 등 어떤 것으로 부르든지 간에, 그것을 항상 타자의 목소리이다. (옥타비오 파스)


"나는 대략 처음과 끝은 알고 있고, 나중에 중간 부분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부분들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느낌은 없고, 그것들이 내 의지에 종속된다는 느낌도 없다. 그것들은 이미 존재하지만, 숨겨져 있을 뿐이다. 시인으로서 내 임무는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보르헤스)


"나는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었다. 발데르, 아름다운 그가 죽었다. 죽어버렸다." (롱펠로우)


"정오에 가끔, 밤이 강가로 가는 것을 보았고..." "말 위에는 죽음과 공작새" "슬픔을 들어올려 멀리 끌고 가서, 슬픔으로 집을 짓고, 삼백 년 동안 그 속에 갇혀" (군데라, 향수)


"그의 무덤은 플랑드르의 전쟁터이고, 그의 비명은 피 흘리는 달이다." "피 흐르는 일식과 트리키아의 달, 너의 여정은 이미 봉인되었다. <케배도> 이 시구들은 훌륭하다. 왜냐 하면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아름다움은 육체적 감각이다. 그것은 우리가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평가의 결과가 아니며, 특정한 법칙을 통해 우리가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아니면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보르헤스)


나는 언제나 내 운명이 문학임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수많은 나쁜 일과 몇몇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모든 것, 특히 나쁜 일들이 나중에는 글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화될 필요가 없으니까.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보르헤스)


시인의 임무는 고정된 시간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여덟 시에서 열두 시까지, 그리고 두 시에서 여섯 시까지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항상 시인이며, 계속해서 시의 공격을 받는다. (보르헤스)


작가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이 자신에게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수치와 장애와 불행까지도 예술의 재료로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이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처한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영원하거나, 영원하려고 소망하는 것들을 이끌어내야 한다.(보르헤스)


"슬픔보다 더 넓은 공간은 없고, 피 흘리는 슬픔에 견줄 수 있는 우주는 없다." (네루다)


"고통을 명백히 들추어내고자 하는 필요가 모든 진실의 조건이다." (아도르노)


"유일하게 진실한 사고는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파괴하지 않는 사고이다." (아도르노)


"글을 쓰는 동안만이라도 언어와 빛이 동일해진다. 언어로도 삶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 미치도록 나를 매혹한다. 끝 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을 꿈꾸지만,나, 사실은 매우 자주 좌절함을 고백해야겠다. 내가 말한 것에, 내가 말하지 못한 것들이 가리어지는 건 아닐까 두렵다는 얘기도 .(정미경)


"말 하나의 저 밑에서 나는 나의 탄생에 참석한다." (알랭 보스케)


이 아름다운에 대한 나의 느낌은 묘한 것이었다 마샤가 나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 아니었으며,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그것은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치 꿈처럼 모호한 슬픔이었다. 어째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 자신과 할아버지와 아르메니아인이, 그리고 나악가서는 그 아르메니아 소녀까지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네 사람 모두 인생에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으며, 이제는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슬퍼 보였다. 그는 이제 소나 양에 대한 이야기를 그치고, 말없이 생각에 잠긴 마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체홉, 미인)


우선은 셔터를 눌러야 한다.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기보다, 누르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것을 '손가락 끝으로 생각하기' 라고 부른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사물을 대하는 순간, 핵심을 뚫어보는 직관이 생기고, 자연스레 셔터를 누른 것이 '물건'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 생각만 한다고 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홍희)


"그렇다, 정말 나는 이 세상 모두를 모방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피카소)


"고양이는 새를 먹고, 피카소는 고양이를 먹고, 그림은 피카소를 먹는다." (피카소)


'생명을 모방해서는 안 되며, 그것처럼 일해야 한다. 생명에 제 가지들을 내미는 것을 느껴야 한다." (피카소)


'무엇이든 거칠게 즐기면 쓰디쓴 것이 되고, 즐기는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사람처럼 매사를 즐긴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가치를 잃는 일이 없으며, 우리를 기품 있게 한다. (카프카, 늘 푸른 저쪽을 향하여)


"밤이 어두운 것은 우주가 젊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서 있는 우리는 우주의 시작을 보고 있는 태초의 목격자들이다."


"우리의 몸은 죽어가는 별에서 만들어진 무거운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


"나는 그녀의 확신과 두려움 사이에서 날카로운 불안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는 이런 부분을 도와주기에 더 적합한 듯하다. 하지만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침묵을 유지한 채, 현미경 사진들에 집중한다. 암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그녀가 생각해 낼 새로운 은유를 나는 기다린다. 나는 우리의 상상력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오랫동안 꼭 안아준다. 그녀의 뼈는 거의 잡히지 않는 듯하다. 마치 희망처럼." (스펜서 내들러)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더없이 고통스런 불운으로 와 닿는 책이다. 책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


'나는 죽을 때까지 진보할 작정이다." (나쓰메 소세키)


"인간은 자기 힘이라도 시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뭐든 해보지 않으면,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본인도 모른다." (나쓰메 소세키)


"소가 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머리를 너무 써서도 안 된다.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


"나는 혼자 힘으로 갈 때까지 가서, 그곳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생활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나의 생활은 하늘에서 받은 것, 생활의 의의를 절실히 맛보지 않고서는 아까워 견딜수가 없다." (나쓰메 소케시)


"네가 예술가임을 잊지 말라. 용기를 잃지 말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브랑쿠시)


"나는 작가다. 내가 아니라, 생각하고 기억하고 발견한다." (카뮈)


"나의 생애에서 가난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할 것, 파산한다는 것" (카뮈)


"많이 쓰면 잘 쓰는 법을 배운다" (체홉)


"당신이 어떤 것을 충분히 오래 본 다음, 앞에 있는 벽에 대고 말하기만 하라. 그러면 그것이 벽에서 나올 것이다.(체홉)


"갑자기 모든 것이 그에게 명료해졌다." (체홉)


"어떤 사물이 흥미로워지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주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플로베르)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요/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깜깜한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일렁이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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