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해 시체들이 생산되었다. 죽음을 갖지 못한 시체들. 죽음이 연쇄 생산의 재료로 전락해버린 비인간들 말이다. 이러한 죽음의 격하야말로 아우슈비츠에 특유한 죄악을 이루며 그 공포에 걸맞는 이름이 된다.
아우슈비츠는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품위가 아닌 것이 되는 장소, 자신의 존엄과 자존을 잃지 않고 있었다고 스스로 믿었던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 사람됨에 대해 부끄러움을 경험하는 장소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가장 선한 자들(수용소에 적응하기에는 정신력이 컸던 사람들)에 비해 '더 악할'뿐만 아니라 익사한 자들, 그의 죽음이 죽음이라 불릴 수 없는 익명의 집단에 비해서도 '더 악하다.' 이것이 아우슈비츠에 특유한 윤리적 아포리아이다.
아우슈비츠는 바로 예외 상태가 상시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극한 상황이 바로 일상생활의 범례가 되는 장소이다. 한계 상황이 흥미로운 것은, 한계 상황이 반대의 것으로 뒤집어지는 이러한 역설적인 경향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는 죽음의 수용소이기 이전에 오늘날 사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어떤 실험, 유대인이 '이슬람교도'로 화하고 인간이 비인간으로 화하는, 삶과 죽음 너머의 실험이 일어난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