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 사랑의 단상
자살의 상념, 결별의 상념, 은둔의 상념, 여행의 상념, 봉헌의 상념, 등, 나는 사랑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해결책을 상상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상상한다. 그렇지만 비록 내가 조금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반복되는 상념을 통해 하나의 유일하고도 텅 빈 행상, 즉 돌파구의 형상을 포학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다른 역할' 즉 궁지에서 빠져나온 그 누군가의 역할을 환기하며, 그것과 더불어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랑의 감정의 언술적 속성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된다. 모든 해결책은 가차 없이 그 유일한 상념, 다시 말해 언술적인 존재로 되돌려지며, 그리하여 돌파구에 대한 상념은 언어임으로써 마침내는 모든 돌파구의 배제 forclusion라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사랑의 담론은 일종의 유폐된 출구(Sorties)
내가 상상하는 해결책은 모두 사랑의 시스템 안에 내재하는 것들이다. 은둔이나 여행 . 자살 등 . 칩거하거나 떠나가는 혹은 죽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칩거하는, 떠나는,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가 보는 것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항상 사랑하는 사람이기를, 또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명령한다.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이런 종류의 동일성이 바로 '함정'의 정의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나는 함정에 빠져 있다. 나는 이중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셈이다. 내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그리고 또한 그것을 다른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이중의 사슬Double bind은 어떤 종류의 광기를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불행에 그 반대되는 요소가 없다면 함정은 다시 닫혀질 것이다. "불행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선 자체가 해를 끼쳐야 한다." ) 이것은 골치 아픈 일이다.
'궁지에 벗어나기 위해' 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 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등등. 만약 사랑의 착란이 그 스스로 지나가고 소멸되는 '속성'이 없다면, 아무도 거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을 것이다. (베르테르가 죽었기 때문에 사랑을 멈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