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을
나는 무연히 흙발의 산책을 했다
포도원의 포도가 농익어 온 가을밤의 공기가 젖었을 때
나는 소설 속의 산책 같이 걸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서럽게 밤의 공기 속으로 녹아들어 간 산책이었다.
깡마르고 뒤틀린 포도나무 같은 살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 가 녹아버리고 증발해버리고 싶은 심경을
그 가을밤의 포도원 하늘엔 태풍 후에 찾아온 흰 구름들이
순한 짐승처럼 밤하늘에 모여 포도원을 밤을 호흡하였고
말라비틀어진 포도나무들에 건 디오니소스의 축제와 정반대인 생의 괴로움을 나는 읽었다
아, 다시
먼 곳에서 농익은 포도향기 흘러와 코끝에 닿는다면
나는 뚱뚱한 흰구름 동물이 되어 포도원의 밤하늘에 정착할 것이다
몸이 흩어지도록 포도원을 마시고 마시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갈기갈기 찢어지는 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