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재즈피자

나뭇잎이 떨어진다.

습기 많은 저녁때의 초록빛 어둠 - 보들레르

by 일뤼미나시옹

***산문에서 소개하는 재즈 아티스트와 앨범 제목과 링크한 음악이 다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gzBpK1GcwdQ

에릭 돌피의 연주는 일반적 정통 재즈에 익숙한 이들에겐 연주의 흐름을 쉽게 따라 갈 수 없다. 그의 색소폰과 플룻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변주의 연속이다. 그의 연주에는 기존의 재즈에서 엿볼 수 있는 스윙 감이나 Bob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재즈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연주 같다. 에릭 돌피의 색소폰과 플룻은 안정감이나 편안함, 흥겨움을 찾기 힘들다. 일체의 안일함이나 느슨한 연장 없이 지속적인 방향 전환을 시도한다. 마치 뱀이 똑바로 앞을 가기 위해 제 몸을 지그재그로 움직이듯 에릭 돌피의 색소폰은 갈피를 잡을 길 없는 도발과 충돌, 급진적인 소리의 변형으로 파퓰러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고문이거나, 음악이 아니라고 폄하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에릭 돌피의 연주를 듣고 나면 정신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있다. 혼돈에서 벗어났을 때 개운한 기분 같이, 에릭 돌피의 음악은 차가운 냉수를 마신 후에 내장 속으로 물이 흘러가는 느낌 같은 개운함이 서려 있다 (Out To Lunch/ Eric Dolpy)





야광찌들이 꽂혀 있는 저수지까지 밤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검은 길속에서 낮은 노랫가락이 번져오고 있다. 여름밤의 내밀한 열기 속에서 밤 별들은 차돌처럼 단단히 박혀 있다. 벼가 익는 들판의 중앙 복개도로 위로 낯선 이국의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한 남자가 지나간다. 그는 저수지 안쪽 동네에 있는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다. 인도나 방글라데시, 태국이나 미얀마. 어느 먼 불교나 힌두교의 나라에서 그가 사랑한 별들을 이국에서 보며 걷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 그의 외출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부르는 노래에서 향냄새가 나는 것 같고, 나를 스쳐 지나간 뒤 간간이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는 숯불의 마지막 불기운처럼 밤의 적막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올려다보는 밤 별들의 입술에도 휘파람 소리가 파랗게 번져 있었다. (The Water Is Wide/ Charles Lioyd)


https://youtu.be/d1lTy12jXEo



내게 좋아하는 음반 한 장을 소개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권하고 싶은 음반이 바로 이 앨범이다. 당대 최고의 색소폰 주자이며, 이미 재즈의 영역을 뛰어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얀 가바렉과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그리고 기타와 피아노에 에그베르트 지스몬티의 이 음반은 어느 곡 하나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이 자주 연주하는 『Silence』를 들어보면, 마치 음악을 듣는 내가 ‘침묵이라는 옷’ 한 벌을 입은 것 같다. 지스몬티의 피아노로 시작하고 색소폰과 베이스로 이어지는 이 곡은 소리로써 들려주는 침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다.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물속을 들여다보는 왜가리나 학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고, 기도하는 사원 가득히 서려있는 겸허한 기운이 등을 쓸어내리는 듯하다. 특히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내면으로부터의 충만함이 일어난다. 글 쓰는 이들이 깊은 사색에 잠겨 오랫동안 정지한 몸으로 책상 앞에 웅크리고 있듯, 찰리 헤이든의 베이스는 듣는 이의 몸을 그렇게 만든다. ( Magico/ Charlie Haden, Jan Garbarek, Egberto Gismonti)



https://youtu.be/OtqPoCo2cxQ



해질녘 파계사 올라가는 길. 파계사 올라가는 길은 매표소에서부터 느닷없이 가파르다. 적당히 숨을 몰아쉬게 하는 길은 미끈하게 절에까지 닿아 있다. 거꾸로 절에서 내려오는 방향에서 보면 이 길은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같다. 나는 가끔씩 이 길을 걷곤 한다. 길의 양편 나무들과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절까지 가는 시간, 잿빛 기운이 몸에 번져 오는 때. 이럴 때 내 몸은 유영하는 고래처럼 무겁고 커다랗게 느껴진다. 부드럽고 느릿한 고래의 유영처럼 절에 닿아 물 한 됫박 마시고 내려오는 길. 적묵당 지붕과 진이 빠져버린 흰 기둥들 바라보고 등 뒤 저녁 예불 소리를 남기며 돌아오는 길. 소리들이 등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어스름 길. 이런 산책은 시집 한 권 읽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삶의 일부가 이런 길에 버려져도 괜찮은 것이다. 이런 길에서 삶의 일부를 식물들에게 빼앗기거나 저녁 해에게, 구름들에게 강탈당해도, 공양해도 괜찮은 것이다. 마음의 일부를 물에 흘려보내듯이, 삶의 일부가 사라지는 듯 한 산책 ( Scene Is Clean/ Henri Tex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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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파블로 네루다

때때로 나는 인간인 것에 싫증을 낸다

양복점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지만 때때로 나는

펠트로 만든 백조처럼 시들해지고 무감각해져

원시(原始)와 재의 물결 위에 떠다니고 있다.

이발소의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돌이나 양털 같은 휴식뿐.

내가 바라는 것은 건물이니 정원이니

상품, 안경, 엘리베이터 따위를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것.

때때로 나는 나의 발과 손톱과

머리털, 그림자에 싫증을 낸다.

때때로 나는 인간인 것에 싫증을 낸다.

하지만 백합을 꺾어 공증인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야릇한 말을 해서 수녀를 까무러치게 하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시퍼런 단검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거리를 휘젓고 다니다가 얼어 죽는 것은

멋질 것이다

매일 무얼 먹고, 생각하고, 흡수하면서

저 아래, 대지의 축축한 내장에서

머뭇거리다가, 축 처지고, 꿈꾸며 몸서리치는

어둠 속의 뿌리로 지내기는 이제 싫다.

……이하생략……


(Partners/ paul Bley, Gary Pea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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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어머니 돌아가신 빈집에 이사를 하고 맨 처음 내가 한 일은 개의 목줄을 풀어주고, 미친 듯이 너른 마당을 뛰어다니는 개의 기쁜 몸을 보는 것이었다. 목줄 풀어주고 여러 날 지나 개는 대문 아래 흙을 파헤쳐 개구멍을 만들어 집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대문 밖은 곧장 차도여서 불안했지만 개는 여러 시간을 어딜 돌아다니다 돌아왔다. 나는 그간의 묶였던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는 심정으로 개가 파놓은 개구멍을 막지 않고 그냥 두었다.

바람 몹시 불고 큰 비 내리기 전에 집 나간 개가 돌아오질 않았다. 빗물이 개구멍을 가득히 메워, 들어오기가 막막할 것 같아 대문을 살짝 열어두었지만 개는 돌아오질 않았다. 이튿날이 되어도 개는 돌아오질 않아 아주 먼 길을 작정하고 나선 것이라 생각하고 내심 포기하려는 사흘째 되던 날 개는 외출하고 돌아온 틈에 집안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 만들어놓은 구멍 속으로 뱃바닥을 끌며 돌아온 것이다.

개구멍, 내게도 저런 구멍이 있는가. 내 안과 밖이 꽉 조여지는 구멍 있는가. 뚫린 구멍을 온몸으로 채워주어야 나갈 수 있는 자유, 방탕함이 허용되는 구멍. 내게도 그런 구멍이 있는가. 기어코 빠져나가선 허기지고 맥 빠진 모습으로 다시 찾아 돌아오는 구멍. 제 발길이 어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앞만 보고 가는 배회와 빗줄기 퍼붓고 바람 불어도 집 생각나지 않는 배회. 내 안팎이 기진맥진해 다시 찾아오는 구멍. 간신히 그 구멍 속으로 내가 머리 들이밀면 나를 통째 받아내는 구멍. 내게도 그런 구멍이 있는가. 구멍 밖으로 나가면 종적 묘연해지는 그런 구멍이.

깨끗이 핥아놓은 사기 밥그릇에 햇빛 챙챙 하고, 기다란 혓바닥으로 제 눈에 눈물 닦아내며 나를 한 번 쳐다본 개는 쫑긋한 큰 귀를 내리고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는다. 긴 방황의 피로가 서린 개의 몸에 가을 햇살 쏟아지고 나는 개가 파헤친 개구멍을 메운다. (Gun High/ Kenny Wheeler)


https://youtu.be/v2FvC-jzm6U


마당 가득히 트럼펫 소리가 울렸다. 분명히 재즈 트럼펫이었다. 누군가 먼데서 차 문을 열어놓고 재즈를 듣는다 생각해지만, 귀전에 울리는 트럼펫 소리는 오디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분명 누군가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연주하는 소리였다. 내 사는 이웃에 누군가 재즈 트럼펫을 연주한다는 것에, 놀라움과 기쁨으로 당장 차를 몰아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는 경상도 일대를 떠도는 약장수들을 쫓아다니는 악사였다. 막내아들 대학 가면 약장수 쫓아다니는 것 집어치우고 하고 싶은 음악 마음껏 해보고 싶다는 중년의 그는 낡은 청바지와 푸른 재킷을 입은 채 황금들판 앞에 앉아 제법 찬 가을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날리며 포켓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원래 트럼본을 전공 했다는 그는 제이 제이 존슨의 트럼본을 좋아한다고 했다. 제이 제이 존슨의 트럼본은 마치 솜같이 부드럽다. 고 했다. 그는 그 솜같이 부드러운 음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대금의 3번째 구멍과 4번째 구멍의 간극이 다른 구멍들 사이의 간극 보다 넓은 것과 블루노트 음계가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이유는 3번째 음과 4번째 음은 정확히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명확히 잡혀지지 않는, 정해진 음악에서 벗어나 있어서 그 어느 누가 연주해도 똑 같은 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음에서 벗어나 있는 그 공간에서 바로 한스런 음이 나온다고 했다. 연주가의 영혼이 그 공간에 들어간다고 했다. 때때로 삶에의 회의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대금연주나, 블루노트 음계의 연주를 하고 나면 육체가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詩에도 블루노트 음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 시는 그런 공간이 없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한숨이(Eminet Jay Jay Johnson, Vol, 2/ Blue Note)


비잔틴의 그리스 음악과 그리스 정교회의 부활절에 부르는 찬송가에 의해 영감을 받은 이 앨범의 음악은 여덟 장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가 되었다.(Akroasis/ Vasslis Tsabropuls) 나를 이 음악으로 이끈 것은 표현상의 단순함 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는 본질이었다. 나는 이 진기한 음악적 표현에 깊은 존경과 독특한 멜로디 형식에 주의하며 접근했었다. 그리고 대대로 계속해서 이어온 거룩한 전통의 맥락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글: 바실리스 사브로폴로스, 번역: 김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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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pFJCZwnD80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 소리는 순수 그 자체이다. 물속에 가라앉는 돌멩이처럼 피아노 소리는 차고, 깊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일흔 살 나이의 고령이 연주하는 음악이라곤 믿어지지 않게 피아노 음들은 긍정적이다. 음색의 밝기에서도 아이들이 먹는 아이스크림 같이 청량감이 느껴지고, 소풍놀이 가는 아이들 발걸음처럼 거침없이 까불고, 놀고, 흥겹다. 가을볕이 완연한 시월의 오후, 오전 내 굶어 속이 텅 빈 내장을 한 채 가을 하늘 올려다보고 있다. 감나무 가지에서 잎이 떨어질 때마다 뱃속은 가지 사이의 하늘만큼 허기가 느껴지지만, 나의 단신은 이유 없고, 이유 없이 가을 하늘을 닮고 싶은 탓에 굶는 것이고, 진종일 맥없이 흐릿한 시선으로 있는 것이다.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 소리에 끄덕거리는 상체로 내 속에 안일과 근심과 권태로움을 끌어안고 꾸르륵거리는 뱃속의 허기를 진종일 함께 끌어안고서. ( Dear Old Stockholm/ Eddie Hig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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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f8IjvT9t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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