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봄

[나도 따듯한 T가 될 수 있을까] 2

by 정원에


'그간 잘 지내셨죠? 윤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기뻐요.'




송쌤이다. 언제나 솔직한 자기감정을 과하지 않게, 유쾌하게 표현해 주는, 그냥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어 주는 사람. 나보다 한 살 아래면서 학교 뒤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는, 아마추어 건축가이자 전국적으로 독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따듯한 동네 형같은 유명인이다.


책읽기 분야에서는 명성이 대단하다. 방송에도 여러 번, 기사에도 여러 번, 책은 열댓 권. 동종업계에 있는 나와 같은 교사들 사이에서는 거의 연예인급이다. 그런 송쌤을 전화 한 통으로 만나는 나를 부러워하는 지인들도 많다. 그런 송쌤이 지난 2년 간 어머님 병간호 때문에 학교를 떠나 있다.


얼마 전 내년에 활용할 교재를 만들면서 내 전공과 관련한 분야에 조언을 구해왔다. 교재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복직을 위한 워밍업 중인가 보다. 짧은 조언에 대한 보답을 꼭 해야 한다며 날짜를 잡자고 한 게 엊그제 퇴근길. 송쌤을 만날 때는 항상 한 가지 즐거움이 따라다닌다. 바로 그 동네 숨어 있는 맛집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송쌤의 맛집 기준은 조금은 복합적이지만 결국은 딱 한 가지. 정직이다. 가격과 양보다. 주인장이 (정서적으로) 헤비 하지 않고 정직으로 만드는 곳, 그런 곳을 갈 수 있다. 이번에 그렇게 안내받은 곳이 제주도 몸국 전문점이었다. 역시나 휙 하고 지나칠만한 휑한 곳에 숨어 있듯 웅크린 집이었다. 메뉴도 단 두 가지. 몸국과 제주 돼지고기 수육.




'그런데, 11월, 지금은 가을인가요 겨울인가요. 선생님?'




역시 송쌤답다. 언제나 유쾌하게, 하고 싶은 질문을 아주 경쾌하게 한다. 주로 지정학적인 역학 관계, 사람간 관계의 역동성, 공간을 들여다보는 시선, 오감으로 느끼는 삶의 기록등과 관련해서 함께 있는 공간에서 뻗어가는 생각을 아주나이스한 타이밍으로.


'제주 몸국 한 그릇에 온몸이 사르르 녹듯 뜨끈해지는 기분이 여전히 좋은 걸 보면 분명 겨울이네요. 그런데 다 지나가려는 가을이 아쉬워 완전하게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일부러 덜 하려는 듯한 광경이 비치는 듯도 하고요.'


송쌤덕에 한 그릇 몸국을 먹고 온 몸이 더 따듯해진 날 저녁. 타닥이와 함께 동네를 걷다, 달리다 했다. 며칠 전부터 걸을 때는 여전히 괜찮은데 달릴 때 정면으로 달려와 얼굴에서 빗겨나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그렇지만 걷다, 달리다 보이는 동네 풍경들 속에는 가을도, 겨울도 아닌 이미 봄이 곳곳에서 비쳐 보였다.


한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 줬던 커다란 양산. 이제는 가지런히 말려 접혀서 축 늘어져 있다. 그 양산도 깊어가는 가을 저녁, 겨울 새벽이 추울세라 그 누군가가 정성스러운 손길로 정갈하게 씌워둔 덮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잉? 안 가요? 아빠, 뭐 봄'하는 듯한 눈빛으로 멈칫 올려다 보는 타닥이의 새까만 눈빛때문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수북이 골목에, 도로에, 차 지붕에 쌓였던 낙엽들도 온종일 고생했을 손길덕에 가지런히 포장되어 파란색 비닐속에서 봄으로 실려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온 동네가 온 가을이 봄을 기다리는 장소였나 보다. 그 옆으로는 땅속에 저장된 봄을 겨우내 포근하게 안아주려 화단에 보온벽을 설치하기 위한 짧은 몽당 말뚝이 며칠 새에 다 세워져 있다. 그 모습만 봐도 봄이 보인다. 땅속에 숨어 있는 가득한 봄이.


그 모습을 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집 앞 마트 길가에 나와 있는 봄동도 같이 그러고 있었다.



야, 오, 너도 봄이야, 나도 봄인데.

반가워, 너희들 다 봄이구나.

난 멀리 땅끝 바닷가 해남에서 왔어.



타닥이도 나도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크게 크게 돌면서 온갖 봄을 다 구경했다. 숨어 있는다고 해도 다 보이는 그 봄을. 봄을 찾아내면 보물이 된다. 내 마음이. 그 마음을 가지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 마음도 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에너지다 그렇게 봄을 꼬깃꼬깃 숨겨 두는 모든 겨울은 언제여도 익숙해지지 않는 새 겨울이다.



그렇게 숨어 있는 봄을 찾아 경쾌한 기분이 들던 그 날.



'목표 모두 달성! 오늘 고생한 당신, 정말 수고하셨어요'



라는 워치의 기계적인 멘트조차 내 마음을 황사 없고, 미세먼지 없고, 비염 없는 봄으로 만들어 줬다. 선홍빛으로 씰룩거리는 타닥이 엉덩이를 기분 좋게 바라보며 뒤따라 걷는데, 송쌤한테서 또 봄이 날아 들었다.


'오늘 만남을 표현해 준 샘의 언어가 아름답습니다. 변함없이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선생님과 만나서 제 영혼이 조금 더 좋아졌어요. 꼭 평화롭겠어요☺ 선생님이 학생들과 멋있게 지내셔서 이야기를 듣는 데 참 편안했어요. 고마워요. 우리 내년 봄에 꼭 다시 봐요✈' 하고.



...한줄/한 겨울속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봄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지 않아요. 마음만 먹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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