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들을 위하여

[짙은 새벽이 나에게 거는 속삭임] 2

by 정원에

피곤해 보이지만 기분 좋게 웃으면서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한 뒤 근 몇 달 만에 한의원을 찾았다. 가깝지는 않아 자주 가기 쉽지는 않다. 서넛은 이미 양말을 벗은 채 소파 여기저기에 열댓 명이 앉아 있었다. 그 한의원은 대부분의 침을 발에다 놓는다.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40여분 넘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몇 분처럼 지나쳤다. 들고 간 <황홀한 글감옥> 보다 앞자리에서 나를 마주 보고 나란히 맨발로 앉은 내 또래 중년 여성들의 대화가 더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에. 서로 아는 사이인데 오랜만에 한의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모양이었다.


먼저 온 이가 나중에 온 이를 보고 얼굴이 까매졌다며 걱정 섞인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서 양손을 쭈욱 뻗어 막 앉으려는 나중 온 이를 자기 옆으로 끌어내려 앉히듯 한다. <황홀한 글감옥> 지면에서 튕기듯 날아간 내 시선에도 얼굴이 살짝 까매 보이긴 했다.


인사를 받은 이는 앉자마자 발목에 분홍색 하트가 수놓은 듯 선으로 그려진 양말을 벗겨내 매고 있던 자그마한 백 속에 쑤셔 넣으면서 대답한다. 식구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친정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모셔 놓고 있다고. 말에서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5인실에 2명의 요양사가 있고 환자 1인당 월 118만원의 간병비를 낸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간경변으로 복수가 차 오늘, 조금 전 다시 응급실에 입원을 하셨단다. 식사를 전혀 못해 7만 원짜리 영양제로 연명 중이시라고. 그러자 먼저 온 이가 얼른 목을 쭈욱 빼듯 늦게 온 이 귀에다 가져다 댄다. 둘은 그렇게 맨발로 머리가 닿았다.


마치 비밀스럽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려는 듯 재빠르게 나와 옆 사람들을 흘겨보듯 돌아본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진해져서 더 선명하게 들린다. ‘희망이 없는데 돈만 자꾸 쓰고 남은 사람이 쪽박을 차는 짓이니 연명을 중단하는 게 어떻겠어’.


듣고만 있던 얼굴이 까만 이를 흘깃 한번 보고는 난 진료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젊은 한의사 역시 얼굴이 조금 까매졌네,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파란색 배드 위에 누워 발등, 발가락 사이, 복숭아뼈 근처, 종아리에 침을 맞는 따끔한 사이사이에 얼굴이 까만 이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아주 많이 궁금해졌다.


침을 다 맡고 나와 결재를 하면 간호사가 파우치에 든 탕을 하나 건네준다. 정수기 옆에서 파우치를 자르고 조금씩 조금씩 마신다. 따듯하다. 식도를 타고 위로 흘러들어 가는 게 기분 좋게, 진하게 느껴진다. 그러는 동안 그 여성 둘은 여전히 머리가 닿아 있다. 아직, 원하는(?) 대답을 설득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돌아오는 차 안. 그 시간대에 자주 듣는 라디오 채널. 십 년을 넘게 들어온 유명한 탤런트 겸 DJ(그 이도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2023년, 지금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의 멘트. ‘선물 받은 또 하루의 시작’. 그 멘트 앞 뒤로 학생들의 사연 섞인 문자가 휴대폰에 들어온다. 아파서 못 가요, 늦게 가요, 어디 계셔요?


오늘. 한때 여러 사람을 글로 말로 유혹했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의 마광수가 자살을 했다. 나의 10대와 20대를 이어 준 그의 소설들. 외설과 예술 사이에 이어진 외줄에 나도 한참 올라타 있게 한 그. 자궁 속으로 다시 숨어들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실천해버렸나 싶었다.


그 사람이 포기한 오늘. 2017년 9월 5일. 나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 삶을 얻은 또 하나의 선물 같은 하루. 죽기 살기로 살아내려고 하는 딱 하루. 짙은 새벽덕에 다시 만난 가슴 벅찬 아침으로 시작하는 하루. 그런 하루라는 선물을 많이, 얼른 남겨주기로 마음먹으면서 천천히, 천천히 나의 오늘 속으로 달렸다.






[원래 글]...2017년 9월 5일 화요일

피곤하지만 씩씩하게 출근하는 아내를 차로 배웅하고 한의원을 찾았다. 근 몇달만에 다시 간 그곳은 여전히 이러저런 증세로 침을 맞으러 온 사람들이 열댓명이 이미 와 있었다. 4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tv도 가지고 간 책에도 집중하지 못한 건 내가 앉아 기다리는 자리와 마주보고 나란히 앉은 중년 아주머니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데 오랜만에 한의원에서 조우한 모양이다. 얼굴이 까매졌다며 걱정담긴 인사를 건네받은, 나중에 온 아주머니는 식구들을 알아 보지 못하는 친정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단다. 5인실에 2명의 요양사가 있고 환자 1인당 월 118만원의 간병비를 내고 있단다. 그런데 간경변으로 복수가 차 오늘 응급실에 다시 입원 하셨단다. 곡기를 끊고 매일 7만원짜리 영양제로 연명중이시란다.


그러자 먼저 와 순서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소곤거리며 진지한 조언을 한다. ‘희망이 없는데 돈을 자꾸 쓰고 남은 사람이 쪽박을 차는 짓이니 연명을 중단하는게 어떻겠냐고’ 긍정도 부정도 안하고 듣고만 있던 아주머니. 긴 병끝에 효자 없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DJ의 나래이션. ‘선물받은 또 하루의 시작’. 동료들과 학생들의 안부문자가 휴대폰에 드나들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의정부와 인천 부모님들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주고 있는 오늘. 글쟁이 마광수는 오늘 자살로 자기생을 평생 쉬기로 선택했다. 오늘, 하루하루는 내 인생의 선물이다. ‘몸은 마음을 따라다닌다’는 말을 실천하지 못해 쉼을 선택한 오늘. 2017년 9윌 5일. 다시 못오는 시간을 올곧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의 시작점으로 하자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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