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삐치지 말아요

[다들 그렇게 살아요. 뻔한 이유로 행복하게] 08

by 정원에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당신이고 나이다.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뻔한 이유로 뭉근한 행복을 바라는 당신의 가슴이 나의 등이고 나의 가슴이 당신 눈이 되어 주면서.]



지금, 삐치셨어요?


늘 그랬듯이 자주 삐치면 또 그러는구나 하고 아무도 신경 안 써요.

발코니에 걸터앉은 비둘기처럼

아쉬우면 다시 날아오겠지 하거든요.


안 그러다가 가끔 삐치면 삐친 줄도 몰라봐요.

뒷산 언덕 위에 굴러 내려온 돌무지처럼

언제 와 있었는지, 있기는 있었는지 하니까요.


삐친 당신은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요.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 걸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손 잡아 주고, 눈 맞춰 이야기 들어주기를


지나고 나서 또 혼자 돌아온 당신이 삐친 이유를 말하잖아요.

이제 말을 했다고, 여태껏 말을 안 했다고, 그까짓 이유로 그랬냐고

나잇값도 못한다고 달빛, 별빛, 햇빛이 밤낮으로 놀려 되기만 하잖아요.


또, 삐치셨어요?

안 돼요. 안돼.

나이 들면서 삐치면 당신만 손해입니다.


당신이, 진짜 당신이 흩날려 사라져 버려요.

자꾸 버석 해지는 피부처럼 당신의 오감까지 그렇게 되니까요.

그러는 사이, 이 짧은 가을이 또 그냥 다 가버릴 테니까요.


마음대로 하라 해도 할 수도 없는 당신이 스스로 싫으면서도

사람다움을, 체면을, 품격을 잃지 않으려 그런다는 것을

하늘이, 바람이, 구름은 다 알고 있어요.


이 좋은 가을바람에 우리 같이, 얼른 하나 배워봐요.

바람이 불어 넘기는 머리카락을 억지로 반대로 빗어 넘기지 말자고.

몸과 마음에 이것저것 뿌려대서 억지로 나를 고정시키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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