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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행복

[아빠의 유산] 02

by 정원에

사랑하는 비니에게


'한 문제를 40~50분 넘게 고민하다 답지 없이 답을 홀로 찾아내었을 때의 기쁨, 두 달 넘게 한 작품에만 몰두하다 완성된 걸게 그림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 넣는 순간의 떨림, 뒤에 따라오는 타인을 위해 문고리를 한참 잡고 서 기다려 주는 친절.'



너는 그 기쁨과 떨림, 친절을 '순수 행복'이라고 표현하더구나. 마주 앉아 고뇌하는 네 눈빛이 내게 콕 박혀 와 나야말로 참으로 행복해졌다. '이제' 스물둘인데. 아, 너에게는 벌써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겠다. 물론 나도 자주 그렇게 느끼지만.


자식한테서 '나'를 보는 게 놀랍고, 신기하고, 황홀하면서도 때로는 꽤나 괴롭고, 자주 미안하고, 간혹 아플 때가 있는 양면적인 존재라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너를 보면서 떠오르는 나의 스물둘은 그런 눈빛을, 자리를 갖지 못했으니 더욱 말이다.


스물둘. 세상이 가장 만만하고, 세상 가장 건강하고, 세상 속으로 언제나 뛰어들어 갈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만의 세상을 전부인 듯 자신만만해하고, 세상 누구와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 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


그 나이에 오랜만에 만난 좋은 친구들과 새벽 거리를 활보하면서 너에게 떠오른 물음. '삶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순수함을 잃지 않은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산다는 게 무얼까'에 대한 대답은 에머슨의 제안이 대신할 수 있을까.



현재의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서 후회할 틈을 남기지 않는 것이 행복이다(에머슨)._<이인 <게으르게 읽는 제로베이스 철학)>



사유와 성찰이 없는 상태야말로 방탕에 빠진 삶이라는 생각을 오십이 다 되어서야 구체적으로 조금씩 표현하게 된 '나' 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유와 성찰 대신 외면과 회피, 스스로 선택한 이런저런 중독으로 채웠던 많은 시간들이 아깝기만 하단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자책은 그만두려 한다. 지난 편지에서 이미 당부했듯이 '오늘'의 가치를 올리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중요하니까. 역시 '오늘'이었던 그제. 너와 길게 나눴던 대화의 가치처럼 말이다. 너의 자문에 에머슨의 제안이 맴도는 이유란다.


네가 불쑥 표현했던 행복이 '순수'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다시 생각해 본다. 너와 내가 오늘 만난 사람들은 너와 나처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그런 모습을 비추이는 거다,라는 개연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일까.


아무것도 섞이지 않(았다고 믿)은 신념들을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으로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상태일까. 겉(타인)에서 오는 어떤 영향에도 흔들림 없이 안(자신)에서의 물음에만 집중하는 정신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나'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서만 스스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런 면에서 나의 고백 속에는 네가 말한 '기쁨, 떨림, 친절'과 같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들이야말로 행하고, 느끼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나와 너처럼 사람들은 각자 그렇게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나와 네가 만나는 지금도 그렇게-살아가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덜) 기뻐하고, 떨림을 (못) 느끼고, (불) 친절을 베푸는 정도가 다 다른 것이다.


그 다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인간적이고, 정의롭고, 가치로운 물음에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 답하는 상태. 그 상태를 차분히, 오래 들여다보며 밖(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의식의 습관. 거기서 느끼는 크고 작은 (자기 고유의) 희열.


네가 말한 '순수 행복'은 거기에서 오는 것인 게 분명하다. 지금 통증이 심하지?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보렴. 그것들은 네가 살아온 방식-의도적으로 그렇게 산 것보다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이 만들어 놓은 진액들이란다.


그러니까 그 진액들을 말려버리는 방법 역시 네 안에 있단다. 집을 다시 떠나서도 통증들을 줄이기 위해서 너의 살아가는 방식에 눅눅하게 들러붙어 있는 습관들을 항상 점검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더 도와주고, 힘껏 친절을 베풀고, '나'를 표현하고 싶은데 뉘앙스와 네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듯 어느 곳에서 살 건 관계없이, 심지어는 같은 언어를 써도 마음이 고스란히 뉘앙스에 실려 제대로 전달되게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하거나 쉽게 여길 수 있는 사실은 아니란다.

(2024년 12월 29일)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_<헤르만 헤세(삶을 견디는 기쁨)>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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