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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92병동 일지] 09

by 정원에

몇 시간째 누운 채로 창밖을 본다. 하늘을 달리는 구름을 보다 햇살을 따라 들어왔다. 나와 세상을 분리하는 얇은 커튼이 알록달록하게 파도처럼 일렁인다.



문득, 2018년 여름, 8월이었다. 일기장 한쪽에 써 둔 내용을 다시 읽었다.


'오늘은 근무일인 화요일이다. 매주 화요일은 고정 야근이다. '아'가 퇴근할 때쯤 되어 전화를 했다. 통화가 되질 않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문자글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통화가 바로 되지 않으면 버려진 느낌이 든다.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 생각이 든다.


셀프 걱정. 40여분 뒤에 '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막 집 앞에 도착했다며 숨을 몰아 쉰다. 전화 넘어 목소리가 낭랑하다. ‘알았어, 수고해’하며 정성스럽게 인사를 건네준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없다. 마음이 가볍다.


'아'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생'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이 8월 21일. 6월 이후 한 번도 통화를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역시 받지 않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뭐가 섭섭한가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인지 알 것 같아 더 그렇다. 마음이 무겁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산다. 병상에 안 있어도 병상에 누운 것처럼 또 하루를 산다.'




2024년 겨울, 12월. 올해도 오늘까지 사흘만 남았다. 여전히 관계는 커튼처럼 얇으면서도 일렁인다. 축 늘어져 있지만 다 들린다. 안 보이지만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이라도 '나'를 에워싸고 지켜준다. 내년에는 좀 더 '나'로 사는 하루를 하루씩만 더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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