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오랜만이었다. 언제 이런 곳을 가봤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다. 서울 한가운데, 지하철역에서 내려 빌딩숲 사이로 조금 걸었다. 그 장소를 안다고 했던 동료가 앞장서 가다 사람들 무리 뒤에서 안쪽을 기웃거렸다. '아, 여기 맞네, 여기에요.' 그곳은 이미 많은 이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거대한 빌딩이 내려다보는 좁은 골목 진입로 모퉁이에 숨어 있듯 안쪽으로 깊게 자리 잡고 있어 기다리는 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던 노포 같은 허름한 공간이었다.
줄을 선지 몇 분 지난 뒤. 우리 일행 뒤에 서 있던 이가 갑자기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 바깥에원래 네 명 테이블이 하나 있었어요. 그러면 댁들 넷이 얼른 앉을 수 있을 텐데. 쩌기 사장이 나서서 신고하고 *랄하는 바람에 치웠잖아. 어휴, 쩌어~기 높은 곳에 있는 그놈하고 똑같은 놈들이 아직도 여전히 있어요, 있어. 다들 지 맘대로라니까. 돈 없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지, 없어요. '
그놈이 누구인지 짐작을 하기에는 손가락으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낼 듯 짧게 몇 번을 찔러대는 통에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가게 출입구 바깥에 걸린 솥단지에서 연신 끓고 있는 우윳빛 육수에서 올라오는 새하얀 김 같은 낯설지 않은 뜨끈한 연대감.
같은 목적으로 줄을 서 있는 타인에게 하소연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묵묵히 들어주는 이들이 있는 순간. 그런 선한 느낌을 요즘은 경험하기 쉽지 않다. 20여분을 추운 밖에서 기다리다 막 홀로 나갈 국밥용 돼지고기를 서너 번 토렴을 하면서 우리 일행을 올려다보면서 '다음, 들어와!'라는 퉁명스러운 이모님의 반말투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열 평이 채 되지 않을 실내에 들어서니 돼지국밥 냄새와 빼곡히 앞뒤로 앉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온기가 뒤섞여 텁텁했다. 좁은 실내와는 어울리지 않게 두툼한 원목 테이블이 가득 찬 사람들을 세줄로 주르륵 갈라놓았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3개. 그 테이블에 맞닿은 2인 테이블. 그렇게 총 6개의 테이블에 우리까지 스무 명 남짓한 이들이 웅크리고 앉았다.
돼지국밥 4개에 수육 큰 것 한 접시를 시키고 내가 앉은 바로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면서 둘러보니 우리 일행만 넷이다. 나머지는 혼자 또는 둘이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는 좁디좁은 공간은 앉으면 없어진다. 허리를 곧게 펴서 앉으면 뒷사람과 서로 등이 맞닿을 정도다. 그래서 다들 앞으로 엉거주춤 숙이고 앉은 듯했다. 그 사이를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는 작은 키의 이모님이 동분서주 미끄러지듯 잘도 쟁반을 손님 머리 위로, 우리 위로 휭휭 날아다니듯 한다.
들어오는 입구 왼편 안쪽으로 자그마한 공간이 주방이다. 테이블과 같은 색깔의 기다란 원목 도마 위와 다락방처럼 그 뒤쪽으로 움푹 들어간 공간 안에 하얀 김이 연신 올라오는 삶아 방금 건져진 듯한 돼지고기들이 아주 편안하게 덩어리, 덩어리째 놓여 있었다. 살짝 기억자 모양으로 꺾여 바짝 붙어 서서 도마 위에서 고기를 썰고, 그 옆에서 쟁반 위에 밑반찬-김치 하나에 간장 종지 하나, 양파와 고추 썰어 담은 게 전부였다-을 담아 옮긴다.
표정이 무뚝뚝하게 매서운 칠십 대쯤으로 보이는 이모님 두 분이었다. 고기 썰고 연신 토렴을 하며 손님 교환 여부를 호령하는 분이 대장, 그보다 좀 작은 분이 서빙에 설거지 담당인 듯했다.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하니까 그 작은 이모님이 돌아보지도 않고 그런다. '싫어!'. '그럼 가져다 먹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든가 말든가.'라며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 없이 웃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 테이블 옆에서 내내 이어폰을 낀 채 혼자 국밥에 소주 한 병을 마신 젊은 분이 아마 카드를 냈나 보다. '카드 안돼!'라는 단호한 한마디에 왼쪽 뺨이 불그스레 해지는 듯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부리나케 쥐색 롱패딩 안쪽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다급하게 꺼내 도마 옆 돈통에 넣고 나간다.
그러자 '들어와!'라고 했던 대장 이모님이 고기를 썰다 말고 빼꼼히 밖을 내다보듯 그 젊은이에게 손을 뻗는다. '자, 오백 원 가져가'라고 외친다. 얼른 사라지고 싶(었) 던 그분은 다시 얼굴이 불그레 지는 듯하더니 '괜찮아요. 그냥 갈게요'라니 그러신다. '아구야, 나 부자 되겠네. 아 됐어, 여기. 가져가!'. 오백 원짜리 동전을 두 손 가득 받아 안듯이 건네받으면서 민망한 미소를 짓는 그분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가마솥 육수 김처럼 뿜어져 나온다.
바깥 화로 위에 걸친 큰 솥에서 끓이는 육수에 안쪽 주방에서 칼질한 고기를 채반에 받쳐 가지고 나가 한 그릇 한 그릇마다 토렴을 해야 해 출입구는 계속 열려 있어 그 사이로 찬 바람이 들이쳐 사람들 사이를 돌아나가는 길에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 들어왔다. 동료들 셋이서 소주 3병을 마시는 동안 넷이 자리를 차지한 듯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건 그렇고 가장 중요한 맛과 양, 가격.
위 사진에 있는 수육 한 접시가 만원이다. 접시에 수육을 썰어 담을 때도 양은 오로지 대장 이모님 눈대중이었다. 여기에 동료들이 마신 세 병의 소주값이 9천 원. 그제야 누렇게 바랜 벽과 비슷한 색깔의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막걸리는 2천 원이다. 50년 전통이라는 그 가게는 그 세월 동안 메뉴판에 숫자 하나 고쳐 붙인 흔적조차 없다.
불편한 자리, 막 대하는(듯한) 주인장, (사람에 따라서는) 청결함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생각될 수 있을 이 공간에 왜 이렇게 줄을 서가며 기다리는 걸까. 물론 가장 큰 것은 가격이었을 거다. 게다가 국밥 안에 있는 고기의 양이 만원 짜리 웬만한 집보다 더 많고 구수하기까지 하다. 국물이 고기 냄새 하나도 나지 않고, 깔끔한 건 아마 기본이었지 싶었다. 그런 돼지 국밥이 한 그릇에 글쎄, 3, 500원. 세상 어디에 또 이런 식당이 있을까.
하지만 가격과 양, 맛만큼 중요한 게 분명 있지 싶었다. 천천히 국밥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동료들이 소주잔을 건배하는 동안 이모님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손님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데 아주 익숙해 보였다. 단골의 속사정까지 알고 있는 듯한 대화였다. '그냥 뜨끈하게 한 그룻 먹고 털고 일어나.' '그렇다고 뭐 어쩔 건데? 다 그래, 요즘 다 그렇다고.' '자, 쟁반 좀 지나갑니다. 어? 오셨어?'
짧지만, 깊은 그 대화들 사이에 놓인 나는 문득 서울 한가운데서 먹는 행위 자체보다 사람을 느끼고 싶을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삼십여 년 전으로 날아간 듯했다. 사실, 그 동네는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자전거로 신문을 배달하던 구역이었다. 물론 천지개벽으로 그때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쩌면 50년 전통이라는 그 집도 20대일 때 그 앞을 새벽마다 수없이 뛰어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때만 해도 혼자 밥 먹는 게 참 싫을 때였다. 식당에 혼자 들어가는 게 마치 금지된 것처럼 다들 여기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때가 떠올라, 사람이 그리웠던 때가 떠올라 나만 외롭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나만 기운 차리면 살만 하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어떻게 해도 넉넉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음식값만큼(만) 사람을 대접하지 않는 (투박한) 진심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는지.
혼자여도 당당할 수 있는 메뉴 조합-소주 한 병에 푸짐한 국밥 한 그룻을 다 마시고 먹어도 7천 원에서 오백 원이 남는다-은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보태어 골목 안으로, 빌딩 숲 속으로 들여보내주는지도 모른다. 고기 한 점, 국물 한숟가락마다 세상은 같이 사는 거구나, 같이 잘 살아야겠구나 하고 기분좋게 흥얼거릴 수 있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그 집 내부, 음식 사진을 (평소 하듯이) 사진을 찍는 나를 위해 동료들이 잠깐 기다려준다. 그곳을 안내한 후배님은 소주병을 든 채. 이제는 '사진 찍어 뭐 하시려고요?'. 하고 묻지 않는다. 야들야들한 고기 한점을 크게 베어 물고, 소주잔에 물잔을 부딪히면서 웃음으로 묻지도 않은 대답을 속으로 했다.
'사진 찍는 것은 글을 쓰는 이유가 같은 것 같아요.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그 장면에 담긴 나와 당신들을 되새기고 싶어서죠. 나중에 그런 상황이 또 일어날 때 더 기뻐할 수 있게,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 그리울 때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참아내기 위해서. 그때의 오늘을 그때의 그 사람들과 또 하루 잘 보내기 위해서.'
갑자기 영하 10도까지 떨어져 유독 추웠던 날, 뜨끈한 돼지국밥을 한가득 먹고 나선 좁은 골목이 봄날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