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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사는 삶 2

[아빠의 유산] 04

by 정원에

사랑하는 비니에게



지금, 새벽 04시 37분. 스탠드 등 하나, 자그마한 엘이디 등 하나에 노트북 모니터 화면 빛이지만 온 우주에서 지금, 여기가 가장 밝다.


네가 어릴 적 함께 뒹굴며 잠들었던 따듯한 이곳을 기억하지? 얇은 암막 커튼 한 겹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새벽마다 반짝이는 별빛처럼 떠 있는 이곳을.


그러고 보니 새벽 시간마다 나는 빛이 가득한 이 안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있다. 단 한 번도 허공에서, 바깥에서, 저 멀리서 이곳을 이 새벽에 바라본 적은 없네.



"스물셋이 되는 동안 진심으로 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_<비니>


마찬가지겠다 싶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디서 어디를 향해 바라보느냐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돼고, 이용될 수 있다고. 무엇보다, 언제나 생각의 내용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네가 비행기를 타기 전 던지듯 내뱉은 저 말의 행간의 의미를, 네 마음속 깊은 곳에 묵혀 있는 '진심'을 나의 입장에서 이해해 본다.


매 순간을 로 살고 싶(었)구나!

네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말한


-어제 보고 또 오늘 보고 싶어 점심때 떡국을 끓여 놓고 기다리신, 헤어질 때마다 눈물짓는 할머니.

-네가 두꺼운 이불속에서도 나오지 못하는 싸늘한 추위는 물론 일 년 사계절 날씨와 관계없이 일하고 또 일하시는 할아버지.

-묵묵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른 집 아이들을 위해) 하루를 가득 채우는 엄마, 아빠.

-너의 치아를 정성으로 치료해 준 치과의사.

-주말에도 늦게까지 붕어빵을 바삭하게 구워 파는 사장님


이들이 모두 진심으로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


그들의 삶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래. 네가 느끼고 보고 싶은 방향에서만 생각하고 있어서 그래. 네가 이미 생각의 방향을 정해 놓은 거지. 그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데, 나는 뭔가 하는 자책의 근거로.


과연 그렇기만 할까? 왜 추운 날 쉬지 않고 붕어빵을 굽고 또 구워야 할까? 왜 은퇴하신 뒤에도 끊임없이 새벽 출퇴근을 (해야만)하실까? 왜 하기 싫어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좋은 소리 듣지 못하지만 매일 설득을 시도하고 있을까?


맞아. 그냥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거야. (자기) WISH이건 (타인에 대한) 책임이전에 자신이 자신 스스로를 먼저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미 네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먹고사는 게 해결되어야 그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고.


바로 그거야. (일 년 내내, 아니 생애 내내 먹이만 찾아 헤매는) 동물과 다르게 살고 싶은. 그 이유를 너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더구나. 그들은 그들을 아주 잘, (거부하지 않고) 꾸준히 스스로를 '책임'지고 있는 거라는 것을.


그게 누군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일 수도 있고, 네가 표현한 대로 자신의 WISH(원하는 것들)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하나의 작은 연속 동작일 수도 있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진심으로 산다는 것은 작은 연속 동작으로 잘게 쪼개진 매 순간을 자신으로 사는 연습을 하는 것이란다. 계속 연습인 듯 실전인 듯. 끊임없는 시행착오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과정 그 자체 말이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걷고 있는 그 길 자체가 그것이지. 언제나 '이게 내 것이 맞나, 내가 맞나'하는 물음은 아직 성급해. 너는 이제 차를 마시기 위해 끓일 물을 주워 담는 중이고,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지는 중이고, 하늘을 날기 위해 터미널에서 지루하게 정비 중인 거니까.


네가 진심으로 살고 있다고 단정한 위의 수많은 무명인의 삶이 고독과 함께 하는 이유란다. 그들도 별반 다를게 없이 여전히 그러고 있는 거니까. 가보지 않은 길,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동경하느라 지금 걷고 있는 길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면 더욱 진하겠지.


결국 지나서 돌아보면 줄기차게 걸어온 길은 결국 한 길인 것이란다.


"아무리 좁고 구불구불할지라도 그 길이 그대가 애정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길이라면 그대로 그 길을 따라 걸으라. 비록 큰길 위에 서 있는 여행자라 할지라도, 그의 눈에 보이는 길이 울타리 사이로 난 좁고 험한 길이라면, 그 길을 추구해 나가라. 사람이란 결국 자신만의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구도자의 편지, 158p)>




너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구나!

그거 아니? 네가 태어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로 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간 적이 있어. 지금의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수목원 근처로 말이야. 그곳에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한테 엄마, 아빠가 야단을 맞은 적도 있단다.


100일도 되지 않은 갓난아기는 바깥에 나오면 위험하다고 여기는 분이셨거든. 그분이 아기였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집이었을 거야.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으니까.


그런데도 엄마, 아빠는 틈만 나면 드라이브를 가려고 했었지. 왜인 줄 아니? 찬초 모두 유난히 구름을 좋아했었거든. 특히,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으로 올려다보며 '같이' 달리는 구름을.


달리면서 구름을 보려면 가끔 창문도 열었고, 그럴 때마다 차 안 가득 들이치는 바람도 좋았고, 바람 타고 들이치는 햇살도 좋았었지. 무엇보다 너와 동생은 맑은 하늘에서 구름을 올려다볼 때마다 룸미러로 보이는 표정이 너무 예뻤어. 그냥, 가만히 보고 있어도 행복해졌어.


아빠가 드라이브를, 운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다야. 그래서 일부러 휑하고 지나가는 고속도로보다는 구불구불하게 느리지만, 화장실이 불편하지만 국도로, 지방도로 돌아 돌아 달리는 것을 지금도 좋아하는 이유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인간의 성질을 '즈스코로스(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와 '유코로스(유쾌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 나누었어. 물론 양 극단의 이분법적 접근이긴 하지? 그럼, 질문을 다시 바꿔 볼까?


너는 어느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 있니? 플라톤은 타협 없던 소크라테스 아래에서 배우면서, 자신을 부정하는 제자를 보면서 단순하게 유쾌와 불쾌의 차이를 생각해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속에 포함된 진심은 뭘까?


그래. 맞아. 유쾌하다, 불쾌하다의 느낌은,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는 거야. 너와 친한 친구 무리에서 한 명 한 명씩 구분해서 떠 올려봐 봐. 아니, 엄마, 아빠 둘만 염두해 봐도 괜찮겠네.


플라톤이 이야기했듯이 A를 거의 절망케 하는 일도 B로 하여금 가볍게 웃어넘기게 하는 일(경우)은 의외로 많아. 핵심은 A가 될지 혹은 A에 가까울지 혹은 그 반대일지의 결정 기준치를 수많은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체화해야 한다는 것일 뿐.


어릴 적 차 안에서 달리는 구름을 올려다볼 때의 기억을 더듬어 봐. 세상 바라는 것 없었던 그때를. 그 자체만으로 좋았던, 안전하고 행복했던 그때를. 그때 네 온몸을 가득 채우고 눈빛으로, 피부로, 들숨 날숨으로 표현했던 너의 숭고한 감수성을.


어쩌면 플라톤이 우울과 유쾌로 구분한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경험'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지도 몰라. 생각에 머물지 말고 몸을 일으켜 뚜벅뚜벅 실천하면서 스스로 검증해 보라고,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지금,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으신가요?

당신의 삶을 우울과 유쾌의 어느 쪽에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있나요?'



"쾌감에 대한 감수성이 약할수록 불쾌감에 대한 감수성은 강해진다. 그리하여 어떤 일에 대한 성패의 가망이 반반일 때, 천성이 우울한 사람은 성공할 것은 생각지 않고 실패할 것만 염려하고, 쾌활한 사람은 실패할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성공할 것만 기대한다.


다시 말하면 머리가 예민한 사람은 권태를 덜 느끼는 대신에 고뇌나 불쾌를 많이 느끼고, 머리가 둔한 사람은 신경의 작용이 활발하지 못하므로 고뇌나 비애는 적게 느끼는 반면에 권태에 빠지기 쉽다.... 이와 같이 자아의 공허를 느낀다는 것이 바로 권태의 원천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극을 구하여, 마음과 기분에 일시적인 반응을 일으키려고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최민홍(쇼팬하우어 인생론, 181p)>


(2025년 1월 12일)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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