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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간 항아리에 물 채우는 법

[고3의 기술] 03

by 정원에

이제 서른을 훌쩍 넘겼을 A도, 작년에 졸업한 B도 저를 만났다면 아마 시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들었을지 모릅니다. 지금껏 열아홉이 되면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에게 제가 자주 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거든요.



"얘들아, 너희는 도자기로 만든 항아리 같단다."



대부분의 열아홉들은 (몸은 거의) 다 컸지만 이제 막 초벌구이가 끝난 항아리 같습니다. 외양은 언뜻 우람하고 담대하게 보이지만 저마다 꽤나 다릅니다. 외모, 생각, 표현력, 말투, 태도, 성적 등.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단박에 알게 됩니다.


열아홉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다릅니다. 그냥 열아홉이 된 것 같지만, 이런저런 크고 작은 변곡점들을 여러 번 넘겨 온 아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오고 가는 목적과 이유가 다릅니다. 일(공부)을 처리하고, 사람을 만나내고, 하루를 채우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또 같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같습니다. 출발이 다르고,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같습니다. 같은 이유는 단 하나. 열아홉이기 때문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의지가 지녔든 그렇지 않든.


다들 너무나도 깨지기 쉬운 상태로 저를 만납니다. 이미 수많은 금이 간 상태인 경우도 많습니다. 스스로 금을 인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인정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알고 있지만 묵혀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들 무겁습니다. 열아홉이지만, 내몰리는 관심에 스스로 갖는 고민들이 열아홉만 한 게 아닌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A와 B는 또 다릅니다. A보다 B에게 달려드는 세상의 요구들이 더 복잡하게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이 있건 없건, 그것들이 매워졌건 다시 생기고 있건 관여하지 않습니다. 모른 척합니다. 왜냐하면 물을 가득가득 채워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접근이고, 사회적인 역할이고, 현실적인 과제이고, 개인적인 의무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눈망울이 반짝이면서 '잘' 하고 싶다, 살고 싶다고 외치는 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뒤섞여 지내지만, 만나지 않고, 나누지 않고, 함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항아리 자체를 깊고 넓은 물 웅덩이에 풍덩하고 담가 버리는 거야. 너 자체를.

1년만, 아니 반년만. 그것도 어렵다면 벚꽃이 지기 전까지만이라도, 일단!"



그러면 아이들 저마다의 눈빛이 다시 반짝입니다. 눈으로 묻습니다.


직접 상담을 요청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차 한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예쁜(!) 반에서는 수업을 제쳐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열아홉에 푹 빠져보라고. 게임이 빠지고, 사랑에 빠지듯 지금, 열아홉에 해야 할 것에, 해보고 싶은 것에 푹 빠져보라고. 그렇게 누구는 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매트 위에서 구르고, 누구는 밤새워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그 과정을 한두 줄의 일기로 남겨 보고, 다시 읽어 보면서 다짐을 하고, 다시 고쳐 시작하는 과정에 빠져 보라고. 그러는 동안 친구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더 자주 나눠보라고.


열아홉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빠져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생각 없이 행동을 하라는 게 아니라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시간을 '제대로 줄여보는' 첫해가 되어 보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가 알게 된다고 말해 줍니다.


스스로 어떤 금이 있는지를 인지하게 되고, 어디가 더 약한가를 인정하게 되고, 어떻게 자신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연습하게 된다고. 아니면 풍덩 담가 둔 물통 자체를 바꿔봐야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도해야 하는 건지를 알게 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없이 금이 간 (자기) 항아리를 물에 풍덩 담갔다가 빼내는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는 것! 거기에 있습니다. 성공이건, 실패건, 그 중간쯤이건 간에 '끝까지' 해봤다는 경험치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자기가 자신을 먼저 신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열아홉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공부의 본질이 자신의 웅덩이를 벗어나 또 다른 웅덩이에 풍덩하고 (제대로) 빠트리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게 잘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고민이 많아서 고민 없이 철학자가 됐고 고민하지 않게 됐다' _ 소크라테스




[한 줄 실천]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겁니다. 써놓고 하나씩 하나씩, 그냥 해보는 겁니다. 오늘 하루만 잘 채워서 보내보는 겁니다.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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