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인 것만으로도 유세다. 마음껏 유세 떨 준비를 해요!2018년 여름 이후 아침마다 이어진 꽤 오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계란을 삶는 거예요. 아침 식사를 위해서죠.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지점. 거기쯤에서 제가 계란 삶는 순서를 지키는 건 간단하지만, 꽤나 굳건합니다.
솜털 다루듯 조심스럽게 계란 2알을 미리 꺼내 놓습니다. 차가운 냉장고에서 인덕션 위 냄비 옆으로 계란이 있는 공간을 미리 이동시키두는 거죠.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 펄펄 끓는 물속으로 갑자기 옮겨가게 되면 그 충격은 제가 상상할 수 조차 없을 만큼 클 것 같아서요. 저 같아서요.
처음부터 그렇게 한 건 아닙니다. 바로 냉장고에서 물속으로 옮겼지요. 그런데 자주 쭈욱~ 금이 가버리더군요. 그렇게 흰자가 흘러나오면 냄비 가득 거품이 일어 넘치기 일보 직전인 경우가 자주 생기더군요. 그럴 때, 스스로에게 말을 겁니다.
>>'습관이 무섭다'는 말 들어봤지? 왜 무서울까? 어떤 일의 순서(루틴)는 반복되어 익혀진(習) 결과일 뿐이야. 둥지 안의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반복하는 날갯짓처럼. 그 날갯짓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버릇(慣)처럼 드러나는 게 습관 - 순서에 각인된 '익혀진 버릇' -에 오류는 없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해. 자신과 타인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야 //
금은 계란의 운명일 겁니다. 아니, 계란은 반드시 금이 가야만 하겠죠. 자신의 용도대로 세상에 잘 쓰이려면. 하지만 금이 가야 할(필요한)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손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타이밍 맞추지 못하고 생긴 금 덕분에 노른자를 감싸 안고 있던 흰자가 허연 거품을 뿜어 내면서 냄비 안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게다가 다 빠져나온 흰자 때문에 노른자가 반숙의 맛이 아니라 물(에 오랫동안 씻긴) 맛이 강하게 고유의 맛이 반감되거든요.
>>'어느 공간에나 먼저 온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믿어지는) 질서와 규칙이 존재해. 그것들을 네 것으로 익혀서 버릇처럼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너를, 너의 모습을 드러낼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 거야.
타이밍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모두에게 이로운 습관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면 고유한 스스로의 맛이 훨씬 더 강해지는 것이겠지. //
계란 삶은 순서를 저만의 것으로 만드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은 '시행착오'가 필요했었다는 의미입니다. '뭐, 계란 그냥 삶는 거 아냐'라고 처음에는 시작을 했었네요.
하지만 그 덕에 얻은 게 두 가지나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일이건 '시작'하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죠. 그저 '시행착오'를 감안하고 꾸준하게 가면 되니까요. 그다음으로는 '집게'를 사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원래부터나 주방에 걸려 있었던 도구죠.
>>'집게를 사용하지 않는 건 말이야. 몇 날 며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놓고 발표 당일. 다른 시스템에 파일을 집어넣는 꼴이야. 자동 저장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 311페이지에서 파일을 날려 먹는 경우고.
여유가 넘치고 쉼이 있는 휴가를 떠나겠다고 설렘 가득한 부푼 마음에 오래 준비해 놓고 이륙 2시간 남은 공항에서 여권을 챙기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는 때와 같은 것이지. 너무 잦은 악마적 순간은 '습관적으로' 디테일을 놓치는 너의 습관에 숨어 있어. //
이렇게 계란을 '비교적' 더 안전하게 끓는 물에 넣고 인덕션의 시간을 설정합니다. 이 역시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뒤따른 시도 덕분에 노른자가 흘러나올 정도의 반숙은 7분, 노른자가 흘러나오지 않으면서 촉촉한 반숙은 8분, 그 보다 더 오래 삶으면 노른자가 퍽퍽해지는 완숙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리 그 공간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이들이 알려주는) 정보들은 넘쳐나지만, 나에게 맞는, 이로운 것들은 저의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제 것이 된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랍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상태 - 반숙도 다 같은 반숙이 아니다. 촉촉함도 다 같지 않다. - 를 좋아하는지, 내가 나를 좀 더 알게 되게 해 주거든요. 시행착오는 나에게 맞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필수 조건인 거죠.
계란 하나만 잘 삶아도 나를 남에게 강요하는 나쁜 습관이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죠.
>> '말로(토론에서) 이겼다면 내가 정말 옳은 걸까? 설득을 당한 상대는 완전히 틀린 거고?. 그럼, 네가 졌다면 넌 엉망진창인 사람인 거고? 둘 다 옳고,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네가 가진 신념이 어느 선부터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어? 네 입맛에 맞는다고 모든 이들에게 맛집이 되지는 않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말이야. 너의 기준은 그저 네 것일 뿐이라는 것도 말이지. //
아, 매일 아침 계란을 삶으면서 얻은 좋은 습관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루 최소 7분은 근력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일과 사람에 부대끼며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는 날이더라도 이미 그날을 시작하기 전, 7분은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아마 제가 아침마다 계란을 삶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내가 나에게 좀 덜 미안해지게 만드는 루틴 같은 것. 그게 저에게는 계란이 삶아지는 7분 동안 (거창하지 않지만 분명 운동이 되는) 운동을 한 것이랍니다.
살짝 언급하자면, 싱크대 위에 손가락만 살짝 올려놓고 뒤꿈치 반복해서 들기 1분-싱크대를 잡고 완전히 앉았다 일어나기 1분-반만 앉았다 일어나기 1분-45도 뒤쪽으로 양쪽 다리 번갈아 들어 올리기 1분- 팔 굽혀 펴기 50회-기본 플랭크 1분-다리 뻗어 멈추기 플랭크 1분.
이 동작들을 하는 동안 끓어오르는 물속에 흰색(때로는 살구색) 계란이 냄비 바닥과 벽면에 돌돌돌 하며 미세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어느 헬스장의 신나는 음악보다 저를 더 경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또 다짐해 봅니다.
>>'몸을 단련하면서 마음을 내팽개쳐버리는 꼴을 항상 경계해야 해. 자존감이 체력에만 매달려 언제나 원 뿔러스 원 세트처럼 동반 하락하지 않으려면.
몸이 마음을 끌고 갈 때도 마음에 몸이 끌려갈 때도 다 너니까. 낙엽이 다 떨어져도, 은행잎이 몽땅 떨어져도, 밤송이가 영글어 후드득 다 떠나버릴수록 더 잔잔하게 깊어지는 나무뿌리처럼! //
#5년 넘게 아침마다 계란을 삶고 난 뒤부터는
말로만 내뱉던 '시행착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직접 겪어 봐야 한다는 믿음이 신념이 되었습니다. 시행착오의 경험은 스스로에게 '시작'의 두려움을 줄여 주었습니다.
어쩌면, 나를 드러낼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는 습관은 원하는 상태대로 계란을 잘 삶는 연습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일 테니까요.
어느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스스로 공간에 밴 습관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습관이 몸에 밴다는 건 특정 공간에서의 수없이 반복된 날갯짓의 결과였던 겁니다. 그래서 그 공간에 몸이 가 있기만 하면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거였던 겁니다.
랄프왈도 에머슨 <에머슨 수상록>에서 공간을 '공기, 하천, 나뭇잎처럼 인간에 의하여 변혁되지 않은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만들지 않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순수한 상태라는 의미이죠.
내게 이로움을 주는 공간을 많이 지니고 있다면 이로운 습관을 많이 지닌 이로운 사람이 될 겁니다. 공간에 밴 좋은 습관. 그런 공간을 움직이는 동선에서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믿음으로 오늘 아침에도 제게 물어봅니다.
나는 어떤 공간에 주로 머무는지
그 공간은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나는 그 공간과 관계를 어떻게 잘 맺고 있는지
지금 벗어나야 할 공간,
지금 좀 더 가까이 가야 할 공간은 어디인지!
[한 줄 실천]
나에게 어울리는 공간을 약도처럼 그려 보세요. 그런 후 폰으로 찍어 놓고 가지고 다녀 보세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을 벗어나면서 자신이 자신을 믿는, 좋은 습관이 생긴답니다.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월요일 새벽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