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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벌레처럼 살자!

[아빠의 유산] 05

by 정원에

사랑하는 하니에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_ 나는 반딧불(가사 중 일부)



요즘 아빠 귀에는 벌레 서너 마리가 사는 것 같아. 하루 종일 이 노래가 들려. 흥얼거리는 네 목소리가 들려. 일부러 찾아보고 몇 번을 들어 봤어. 그랬더니 다시 네가 보이면서 우리가 보이더라. 새근거리는 너의 잠든 숨소리 들리는 새벽 발코니에서.


2025년 1월. 하니가 아빠옆에 잠깐 있어주는 시간. 날씨는 정말 춥지만 아빠의 몸과 마음은 말랑말랑 따듯한 나날들의 연속이란다. 항상 먼저 다가와서 들여다 보고, 안아주고, 부비부비 해주는 너 덕분에.






별이어서는 안 돼!

아빠가 서재로 쓰고 있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이곳에만 있으면 네가 태어나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왔을 때, 이십여 년 전 새벽이 늘 오버랩된단다. 지금의 이곳은 아니었지만, 길 건너 2단지에 살 때였잖아.


꼭 아빠 가슴 위에서만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너의 날숨의 온기가 새벽마다 발코니에 서 읽기만 하면, 쓰기만 하면 여전히 느껴지는 듯하단다. 너의 영혼 속에는 분명 여러 개의 센서가 들어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거든.


거실과 발코니의 미세한 온도 차이를 잠 속에서도 어찌나 잘 구분해 내던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덕분에 너와 함께 졸면서 지내던 발코니라는 공간이 이제는 아빠의 '위대한 새벽'으로 가득 채우지고 있으니 참 좋다.


아빠도 그때는 너도 나도 별인 줄 알았어. 언제나 반짝이는 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한 번도 왜 '별'이라고 생각했을까 하고 스스로 묻지는 못했어. 그런데 네가 크는 동안 아빠도 크면서 생각이 들더구나.


별은, 별빛은 어둠 속에 갇혀 바라보는 허상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실체가 없는 것이지. 별은 그 자체로 빛나지 못하잖니. 스스로를 빛내지 못하다 태양빛에 반사되는 순간, '아 너 거기 있었구나'하고 발견되는 것이잖니.


별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거야.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존으로 다가갈 수 없는. 그러니 너는 별이 되면 안 되는 거야. 너는 너 자체이니까. 누군가의 빛에 의지해, 종속되어, 자기만의 빛을 가지지 못하고, 반사되어 비추이는 네가 되면 안 되는 거니까.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란다. 네가 빛이 돼야 하는, 될 수 있는 이유는 거실과 발코니를 오가면서 아빠의 가슴 위 귀를 대고 잠들어 있던 그때 이미 네 안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거야. 그래서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


아빠의 가슴속에서 늘 항해하는 문장이 하나 더 있어. 아빠도 이런저런 이유가 궁금해질 때마다 파도가 되어 내면의 해변에 와 부서지는 문장이란다. 아라비아 반도, 뜨거운 사막 위를 달구던 태양을 바라보며 짓지 않았을까 싶은 <루미시집> 속 문장이야.


'태양은 태양이기에 떠오르는 것, 이유는 반드시 자기 안에 존재한다'





별빛은 '오늘'의 각성이란다!

아빠는 네가 흥얼거리던 이 노랫말을 찾아보고, 몇 번을 들어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빠도 한참을 별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아. 하지만 별처럼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는 못했지. 아니, 그렇게 살고 싶은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바람만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내가 나를 잘 몰라서 그런 거였지. 내가 중심이어야 하고, 내가 돋보여야 하고, 언제나 빛나야 하고, 중요한 사람이어야 하고, 좋은 결과만을 만들어 내는 능력자야 하고, 겉으로는 언제나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이지 않은 거라는 것을 가슴으로는 알면서도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였지. 왜인 줄 아니? 내가 먼저 신뢰하는 나, 내가 가장 잘 아는 나는 없이 껍데기만 화려하게 빛나는 상태이니까.


아빠도 너도. 시각과 장소가 달라도. 언제나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다는 말. 우리 자주 이야기를 나눴었지. 희로애락이 모두 몇 날 며칠 몇 시 몇 분이지만 결국은 '오늘'안에 다 있다는 것을 말이야.


왜 지구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기 할 일을 반복, 반복하고 있으니까. 이 사실을 또 까맣게 잊은 채, 새까만 밤만 되면 염치없이 손짓을 해대던 대상이었던 거야, 별은. 별빛은. 나는 이래도 너는 항상 거기에서 언제나 빛나줘야 해라고 외치기만 하는.


자신의 행동이 옳고 부끄러움이 있는지에 대한 도덕적 기준, 그게 염치잖니. 별은 어쩌면 매일 밤마다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여전히 묻고 있을 거야. 아니,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보고 있다가, 참고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하루의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스스로 빛나기 위해 오늘은 무엇을 반복했니?'


아빠는 별의 질문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듯한 오늘'은 어제와 다른 무엇으로 잘 살아냈니?'로 들리더구나. 역시 오늘의 과거와 같아서는 오늘의 미래에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는 증거인 거지.


그럴 때 아빠는 아빠한테 미안함을 표현하려고, 사과하려고 꼭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단다. 스스로 위대하게 빛났던 성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지. 그들의 말을, 문장을, 표현을 어둑한 숲 속 아지트로 삼아 스스로 각성의 상태에 빠져 들기 위해서라도.


본래 (나의) 상태, (나의) 본질을 깨닫고 스스로 깨어나는 힘을 키우는 데는 그들을 반복적으로 만나내는 시간만이 유일한 거니까. 왜? 내일의 오늘은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나'로 살아보고 싶으니까.





그래, 벌레럼 살자. 잘!

네가 이 노래가 슬프게 들리는 건, 아직 벌레처럼 살 수 있는 준비, 용기가 덜 되어서 그런 거야. 그건 당연한 거야. 잘못되거나, 틀렸거나, 고쳐야 하거나 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란다. 절대.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빠도 얼마 전까지 벌레처럼 살 자신이 없었거든. 벌레들이 어떻게 사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거든. 실체 없는 별빛에만 매달리느라 벌레를 벌레 취급하면서 도도한 척했거든. 그런데 말이야. 가만히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면 말이야.


벌레는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빨라. 적응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니? 바로 솔직함이야. 누구에게?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들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아. 자기 한계도, 넘어서야 할 한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거지.


벌레는 자기가 (운명적으로) 던져진 주변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 오늘의 과거인 어제의 오늘 안에서도, 오늘의 미래인 내일의 오늘 안에서도 오직 잘 어울려 살아내기 위한 반복, 반복, 반복으로만 자신을 가득 채우지.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고.


벌레는 자기 안에 독을 품고 있지만, 공격을 받지 않으면 사용하지는 않아. 자신의 독액에 스스로 쓰러지지도 않아.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빛나려는 미련한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거지.


벌레는 정말 부지런해. 항상 같은 모습으로, 같은 방식으로, 같은 루틴으로 사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더욱더 성충이 되기 위해 자신의 허물을 벗어던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니까.


벌레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그것을 위해 '오늘'을 잘 보내는 거지. 자신의 터전이 영원할 수 있도록 온몸을 다 바쳐.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끼니를 잘 챙겨 먹어. 돌아가는 것을 글자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연습하는 거지.


이제, 너와 나의 사전에 '벌레처럼 살자'라는 말을 추가했으면 한다.

우리도 벌레처럼 살자, 잘!

아빠는 이곳에서 너는 그곳에서.



두 벌이 같은 곳에서 같은 먹이를 먹어도 이 벌은 침을 만들고, 저 벌은 꿀을 만든다.

두 사슴이 같은 풀과 물을 먹어도 이 사슴은 배설물을, 저 사슴은 순수한 사향을 만든다.

두 갈대가 같은 물을 먹어도 이 갈대는 텅 비어 있고, 저 갈대는 설탕으로 가득 찬다.

둘 사이에 만 가지의 유사점이 있어도 그 차이는 한평생 인생만큼 크다.

이것이 먹으면 오물이 되고 저것이 먹으면 신의 은혜가 된다.

이것이 먹으면 질투를 낳고 저것이 먹으면 신의 지혜를 낳는다.

이 땅은 비옥하고, 저 땅은 황폐하다.

이 사람은 무결한 천사이고 저 사람은 들짐승과 악마이다.

영혼의 미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둘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_루미 시집(잘란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추신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힌트는 '이영모 씨'. 맞아, 네가 항상 애착을 같고 '이영모 씨'라고 부르는 우리 가족 내돈내산 첫 차를 처음 만난 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란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달렸던 거리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자기 할 일을 '오늘'도 반복, 반복하고 있는 이 지구를 무려 다섯 바퀴 넘게 도는 거리야. 그 거리를 우리, 같이 달리면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이만큼 서로 잘 크고 있다. 그렇지?


(2025년 1월 19일)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유산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월요일 새벽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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