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보통 평생 배워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실제 돌아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명언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가 떠오르는 이유네요. 배울수록 모르는 게 많아집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수많은 유형의 '학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도상 대학생이라는 신분까지를 보통 그렇게 불리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성인시기에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실천하겠다, 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선택일 테니까요.
선택을 해서 '학생'이 되면, 자기만의 ‘시간표’라고 불리는 학습 계획표에 의해 움직이는 게 보통입니다. 정확하게는 ‘수업 운영 일정표’이겠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일상의 시간표에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죠. 사실, 중학생까지가 법적으로 의무 교육입니다. 누구나 다 '그 정도'는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 그 이유는 '추가'여부를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5%에 가깝습니다. 고등교육 이수율은 69.7%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일상 위에서 '학생'을 선택하는 25~64세 성인들의 고등교육(대학 및 대학원) 이수율는 OECD 평균(40.7%)을 한참 넘어선 54.5%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배우는 것이죠. 그 덕분에 저 역시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삽니다.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 속의 여론'(https://hrcopinion.co.kr/archives/31298)
돌아보면 그렇게 많이 교육을 받기를 원하는 이유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자격을 획득하고, 어디에 취업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다, 는 것이었죠. 아마, 배우는 사람이기를 자처한 많은 이들도 비슷할 겁니다. 물론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은 많이 배우고, 잘 배워서, 잘 쓰이기 위해서 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제게 남아 있는 배움의 이유와 목표는 단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됩니다.
"배워서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나의 의견, 관점, 생각을 이유, 즉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적절하게 표현하여 동의하게끔 만드는 과정". 보통 이것을 한 단어로 이렇게 부릅니다.
설득
결국, 공부의 끝에서, 배움의 갈증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계속 저를 두드렸던 키워드는 ‘설득’의 기술입니다.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결국 설득을 하고, 설득을 당하는 과정의 총합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로 ‘설득’은 개인의 삶에 아주 큰 의미를 던져 줍니다. 개인의 성과도, 인류에 대한 영향력도,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농도 진하게 만드는 것이 '설득'에서 비롯됩니다.
또, 설득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입니다. 집에서부터 나라에 까지. 이것 먹을래? 저것 먹을래?부터 지도자를 뽑는 행위까지. 설득은 어느 순간에서나 다양한 의견에서 합의를 해내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설득’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고 발전시키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통해 더욱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죠.
그런데요.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에 국한되면 설득의 과정에서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결과적으로 설득에 실패하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설득을 잘한다는 것이 곧 '말, 언변, 스피칭'이라고 하는 표현의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성이 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설득을 '상대방을 이기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설득이 되었다, 는 것은 어떤 상황인가요? 듣고 보니 그렇네,라고 듣는 사람이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거잖아요. 듣고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지만, 게다가 나빠지기까지 하면 그건 설득이 된 게 아닙니다. 신영복 작가가 설득을 '함께 가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언어에는 분명 언어 자체의 개념적 의미와 함께 언어 외적인 정서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삶 속에서 경작된 그 사람의 인품과 체온 같은 것입니다. _신영복, 담론, 2015, 돌베개, p.55
지금에 와서는 설득은 말이 아니라 질문력, 즉 '질문하는 힘'의 누적이라는 생각에 와닿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아시죠.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하면서 궁극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이 과정은 자기주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정해두고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사태’(특정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를 인정하면서도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함께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질문은 궁금한 것을 묻는 겁니다. 그럼, 어떤 경우에 궁금해지나요? 알지 못할 때, 알지만 아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알다가도 모를 때, 아는 것을 뽐내고 싶을 때... 이런 궁금증은 바로 내 안으로 들어간 것들이 내 안에서 흩어지고, 모이는 과정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 안으로 집어넣는 것들이 많을수록 환상적인 조합이 생기겠죠.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잘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은 시공간에서 충분한 ‘연습’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그냥 되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는 것을 우린 다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충분'이라는 기준 역시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럼, 질문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떤 연습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얻은 해답은 단 하나.
자기 설득
질문을 만들어, 나부터 설득하는 연습을 해야 하더군요. 설득은 말 잘하는 기술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어려워요. 몇 명 안 되는 가족(친구, 지인)도 설득하지 못하면, 밖에서 자기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겠죠. 그럼, 가까운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자기부터 설득해 보는 연습, 그 연습을 평소에 꾸준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남도 설득할 가능성이 커지죠. 자기가 설득이 되어야 믿음이 생기거든요. 자기 믿음. 우리는 그것을 ‘확신’이라고 부르죠.
그럼, 자신을 설득하는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앞에서 이야기했던 ‘시간표’로 돌아가야 됩니다. 시간표 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이 필요한 조건일까요? 그것은 바로 ‘동기’입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결정하는 인간 행위의 근거입니다. 흔히 표현하는 '동기 부여'. 바로, 자신의 내면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죠. 그 힘은 다음과 같은 자기 질문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나의 동기는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인가?
예를 들어, 중요한 과제(프로젝트 발표) 수행을 준비한다고 가정하고,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질문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질문 만들기를 시도해 볼게요.
먼저 자신에게 질문의 꼬리를 물어 질문으로 답을 찾는 연습입니다.
'나는 왜 두려운가?'
'두려운 것이 결과인가, 평가인가?'
'실패의 두려움인가, 후회의 두려움인가?'
'다른 사람에게 받는 평가인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인가?'
.....
다음은 외부의 것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연습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인가? 누구에게 당부할 것인가? 그 대상은?'
또 역할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연습입니다.
'나는 그 역할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기 극복을 하는 연습입니다.
'나는 과거의 실패(시행착오)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이, 어떻게 더 강해질 수 있는가?'
'학생'을 벗어나 스스로의 시간표를 만들어 세상에 잘 쓰이기 위해서는 설득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설득은 스스로 이유(논리적 근거)를 찾아 잘 꿰어 맞추는 연습을 전제로 합니다. 그 연습의 전부는 오로지 '질문'에서 시작되고요.
그러니, 내가 나한테 질문을 만들어 묻고 답하는 연습이 되어야 설득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설득은 함께 잘 가기 위한 조건입니다. 내가 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설득될 때, 진짜 배움이 시작되잖아요.
백희성 건축가는 설득의 가치를 발견한 다음부터 공부하는 태도를 바꿨어요. 수업 앞자리를 차지해 궁금하면 묻고 또 묻는 ‘질문왕’이 된 거예요.
_백희성 건축가, 롱블랙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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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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