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세 번 건너는 동안

[ 모든 게 괜찮아 질 당신 ] 23

by 정원에

일 년에 서너 번 캐나다에 있는 남매들에게 택배를 보낸다. 옷, 학용품, 화장품, 과자류 등 한국에서 쓰던 것, 익숙한 것, 어릴 적 입맛이 그리운 먹거리, 거기에 없는 것 등을 조금씩 하나의 박스에 담아 우체국 국제우편(EMS)으로.


지난달 2일. 그날 있었던 출장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오후 시간이 비었다. 그때 갑자기 집에서 발송을 기다리던 박스가 떠올랐다. 올 들어 처음 보내려고 준비해 둔 택배다. 이번 박스에는 남매들이 만날 예정인 지인에게 선물할 옷 한 벌도 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글을 쓰며, 느긋한 오후를 몇 시간 즐길까 하다 집으로 달렸다. 컴퓨터로 EMS 사전 예약을 한 후 집에 정성껏 포장해 두었던 박스를 들고 집 근처 우체국을 방문했다. 평일 한낮인데도 택배를 보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출력해 간 바코드를 스캔한 직원이 박스 무게를 살짝 낮게 조정까지 해주어 몇천 원을 아끼면서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햇살이 좋았다. 카페대신 타닥이를 데리고 가볍게 산책을 했다. 갑작스러운 한낮 산책에 타닥이도 마냥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일주일, 열흘이 넘었는데도 내가 보낸 상자는 남매들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남매들이 지인을 만나기로 한 예정 날짜보다 3주나 미리 보냈는데, 점점 그날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2주가 넘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당황해하면서 사진 두 장을 내게 보내 주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왜 선물(Gift) 대신 상품(Merchandise)에 표기해 버렸냐'라고. 그때까지도 난 둘의 차이점을 전혀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상자는 업자 간 수입, 수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캐나다 택배 회사가 아닌 세관에 억류(?) 중이었다. 그 후 다시 일주일. 아내와 내가 같이 출근 중이던 날 아침. 결국, '반송 예정'이라는 알림이 우리나라 우체국으로 통해 왔다.


결국 참고 있던 아내는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를 했다. '좀 물어보지'. 쿵하고 닫히는 차문에 잠깐 마음이 불편했다. 내 딴에는 도움을 주고 싶어 한 건데, 하는 '섭섭함'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부탁도 하지 않았던 택배를, 잘 못 알고 나서는 바람에, 이것저것 남매들에게 얼른 주려고 했던 '엄마' 마음을 제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더 크겠다 싶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달 사이 세 번이나 태평양을 건너갔다, 다시 왔다, 또 가야만 하는 비용 또한 적지 않았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주) 특정한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 그게 '섭섭함'이다. 혼자 만들고 스스로 꺾어버리는 감정이다.


결국, 섭섭함은 단순히 객관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게 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도나 존재 여부가 달리진다.


지난주 금요일. 반송처리된 박스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출근하면서 아내와 같이 받았다. 그런 후 몇 시간 뒤 집 앞에 놓고 간다는 택배원의 문자가 다시 날아들었다. 반송 비용은 추가로 없었던 거였다. '아, 다행이다' 싶었다.


체육대회였던 덕분에 다시 집으로 일찍 달려오다 우체국에 들려 새 박스를 하나 샀다.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박스 위에는 노란색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을 새 박스로 하나하나 옮겼다.


그러다 봤다. 가득한 물건 아래 박스 바닥에 있던 커다란 하얀색 봉투 2개. 아내가 하니, 비니에게 쓴 손편지였다. 그날 바로 다시 보낸 박스가 한국의 어린이날이었던 엊그제.


3일 만에 도착했다며 행복해하는 하니의 새벽 톡을 보자 어버의 마음은 고사하고 한없이 얕은 감정에 더 미안해질 뿐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돼 내었다. '모르면 좀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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