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아들과 함께 헬스장에 다닌 적이 있다. 거긴 헬스장도 대형 창고형이었다.
박스형으로 길게 생긴 창고에 벽 쪽으로 대형 전신 거울 앞에 수많은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러닝 머신만 10대 정도. 평일 오전에도 회원들이 꽤나 많았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기구는 아주 제한적이었다. 처음 보는 기구들이 즐비하기도 했지만, 덩치 큰 이들이 괴성을 지르고, 쿵쿵거리고, 한판 하자는 듯했기 때문에.
갸녀린 나여서가 아니가 헬스장 전체 분위기가 자기 과시형 인간들의 각축장 같았다. 운동하는 동안 마음 상태가 그리 편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여기 특이한 헬스장이 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미국 1위 헬스장이라는 플래닛 피트니스.
왜 특이하냐면 회원 자격 첫 번째가 몸이 너무 좋으면 탈락. 초보자들이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운동으로 몸과 마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창업주의 생각이란다.
월 1회 피자 데이, 베이글 데이를 운영하는 점도 아주 좋다. '열심히 운동한 당신, 먹어라'라고 응원까지 해주는 게 너무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아주 마음에 드는 게 하나 더 있다. '평가 금지 구역'을 헬스장 내에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아주 편안해진다.
다른 사람의 몸매 또는 운동 자세를 평가할 때
웨이트 기구를 큰 소리로 내려놓을 때
운동을 하며 크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낼 때
자신의 몸매를 과시할 때
이러고 보니 우리 단지네 헬스장에도 하나의 경우에 대해서는 경고, 아니 협조의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기구를 쿵쿵 내려놓지 마세요'.
이 구역 안에서 이런 행동을 할 때는 경고 사이렌이 울리고 직원들이 등장한다고. 이 사이렌을 '런크 알람 Lunk Alar'이라고 한다는데, 단어 뜻에 내가 괜히 만족스럽다.
으르렁거리거나, 기구를 쾅쾅 내려놓거나,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은 '얼간이'란다. 다소 과격한(!) 퍼포먼스이긴 하지만 그 취지가 충분히 와닿는다.
평가 장려 구역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 역할의 한 부분을 담당해야만 하는 나로서는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슷한 고민을 진짜 실천하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내 주변에 있는, 내가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숲. 숲이 있어 천만다행이다.
내게 있는 유일한 평가 금지 구역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피신하듯 언제나 들어가 들숨, 날숨으로 생을 확신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인다. 숲 바깥에도 나무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를 평가하지도 않으니 타인을 평가하지도 않는 사람을. 옆에만 있어도 그리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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