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봄비

[ 나무야 나무야 ] 07

by 정원에

봄비가 촉촉이 내린 뒤 산책을 하다, 한 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봄비를 흠뻑 머금은 나무의 모습이 하얀색 한지위에 길게 늘어 선 먹 같아서다.


그 순간, 나무가 얼마니 지독하게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마치 물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검은 기둥을 지나, 어깨를 딱 벌리고 선 저 높은 가지까지.


검독수리가 내려 앉아 땅을 힘껏 움켜쥔 듯한 뿌리는 더 밟아봐라 하는 듯 했고, 수없이 잘려 나간 가지는 검은 입술처럼 까맣게 오므라들어 스스로의 상처를 조용히 봉합하고 있었다.


그 아래, 초록색 턱수염처럼 촘촘히 박힌 이끼는 생명의 증거이자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고독한 자기 관리의 웅변처럼 느껴졌다.


봄비는 겨울 잠에서 대지를 깨우고, 새싹을 틔우며 생명의 소생, 재생, 시작의 샘을 채운다. 동시에, 오래 쌓인 먼지와 오염을 씻어내며 비움의 터를 넓힌다.


그 나무는 우주의 순리에 따라 채우고 키우는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봄비를 온 몸으로 맞는다. 그러나 호들갑 없이, 서서히, 은근히, 그러나 끊임없이 스스로를 흠뻑 적신다. 그리고 찬란한 햇살을 다시 기다린다.


눅눅한 날씨에도 내 눈과 마음을 명랑하게 만들어 준 이 생명력은, 결국 나무 스스로 '나는 살아 있다!'라며, 세상을 향해 온전히 외치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나무 전체를 올려다보았다. 건장한 가지마다 넘실거리는 이파리들의 찬란함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나무의 굳건함에서 비롯되었다.

곁의 키 큰 플라타너스가 곧게 뻗어 오르든, 벚나무가 화사하게 만개해 사람들의 우러러 보든, 이 나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나무에 대한 가치 평가를 자기 것인 양 슬쩍 가져다 쓰지도,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도, 주변 나무를 윽박지르며 자기 생명만을 지키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저 뻗은 만큼만 움켜쥐고, 숲에서 '필요한 나'로 존재할 뿐이었다. 이 꼿꼿한 자기 존재 방식은 내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무언가에 흠뻑 젖은 타인의 가치 평가를 내 것인양 착각하지 않느냐. 나는 어떤 생명에게 봄비가 되는가. 햇살이 되는가. 그 전에, 스스로 흠뻑 젖을 줄 아는가. 타인의 빛을 탐하기 전에, 내 안의 메마른 땅에 스스로 비를 내릴 용기가 있는가?


이 나무의 꼿꼿한 자기 존재 방식은 깊은 울림을 준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깨닫게 한다. 나는 오늘 어떤 생명에게 따뜻한 봄비가 되고, 찬란한 햇살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 전에, 내 안의 마른 땅을 스스로 촉촉하게 적실 용기가 있음을 믿는다. 타인의 빛을 탐하기보다, 내 안의 샘솟는 생명력으로 스스로를 채우고, 그 충만함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기를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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