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그리고 존재와 본질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식 ] 06

by 정원에

세상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면, 지금 내 입 속 구석구석에 돋아난 혓바늘은 분명 나를 날카롭게 찌르는 가장 강렬한 자극제다.


5월 초 연휴가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찾아온 이 불청객은 2주 내내 나를 지배하며 그 존재를 고통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여느 때와 달리 전조 증상 하나 없이 어느 날 새벽, 어금니 근처를 오르내리던 혀 옆구리에 허옇게 움푹 패인체 헐었다. 그러더니 지난 주말 동안 입천장을 지나 입술 뒷면까지 염증이 무섭게 번져 나왔다.


늘 다니던 병원에서 늘 같은 의사가, 혓바늘 때문에 먹는 약을 처방해 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던 속 쓰림까지 경험했다. 먹는 음식 양은 적은데, 약은 꼬박꼬박 먹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수업 시간. 하루에도 서너 시간씩, 한 번에 30~40분 이상을 연속해서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럴때마다 일정하게 입천장에 부딪히는 혀의 울림이 통증이 되고 입속에 고이는 침 때문에 정확한 발음이 불가능했다.



미음, 누룽지, 소고기 야채죽, 팥죽, 감자볶음, 소고기 뭇국, 김, 꾸덕한 요구르트, 애호박전, 계란말이, 팥 도넛, 꽈배기, 방울토마토, 장조림, 계란 흰자 프라이, 방울토마토, 양배추볶음, 두부구이, 동치미, 미역줄기볶음, 시금치나물, 콩자반, 스틱 꿀....



2주 동안 먹으려고 시도한 음식들이다.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 일부러 찾아 먹어 먹으려 시도한 음식들이 아니라, 집에 있는 반찬에 아내가 시도해 보라고 내어 준 것들이다.


그러나 '염분'과 '당분'을 입에 남기는 어떤 음식도 통증을 키웠다. 어찌어찌 우물거리듯 삼키고 난 뒤 입속에 남은 소금과 설탕이 입속 전체를 다시 한번 작렬하게 만들 뿐이었다. 병원의 '환자식'이 밍밍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환상의 음식 궁합. 바로 미여국과 에이스 크래커다. 결론부터 말하면 2주 내내 (거의) 아침과 저녁 두 끼는 이 두 가지 음식으로 속을 채우고 있다. 산모였던 그때의 아내보다도 더 열심히 먹고 있다.


물론 평소에는 도저히 생각조차 못한 조합이다. 별것도 아닐 수 있는 음식 덕분에 조금씩 입속에 음식물을 넣고 혀를 천천히 작동시키는 행위에 새삼스레 집중하게 된다. 원래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했던 것들을.


혓바늘 덕분에 아무 날 아무 때 아무것이나 먹는 게 기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맵단짠은 기적이다. 이렇게 작디작은 혓바늘도 온 정신을 지배하거늘, 변변하지 않은 찬으로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평소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입병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혀는 늘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했는데 너무 억울하다는 듯 염증은 강렬한 형태로 그 '존재'를 강제로 다시금 인식시키고 있다는 것을.


'음식을 마음껏 씹고, 현란하게 움직여 말을 하고, 침을 삼키고, 물을 마시고, 혀로 입속 구석구석을 통증 없이 마사지할' 수 있는 것은 혀의 속성이자 목적, 즉 본질이다. 하지만 '선홍빛의 촉촉한' 혀가 내 몸의 중요한 부위로 존재하는 게 우선이(었)다.



모든 염증이 그렇듯 혓바늘은 분명 몸이 나에게 고통으로 강제 인식을 유도하는 게 분명하다. 본질을 존재에 앞세운 결과를. 나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들, 이를테면 스트레스 관리, 수면 부족, 개인위생, 음주, 부족한 수분 섭취 등이 신체적인 결과로 이어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 게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끊임없이 나를, 나의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좀 더 어른스럽지 못한 정신적 예민함에 물리적인 허기까지 동반하면서, (거의) 모든 염증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경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뇌가 있어야 생각할 수 있고, 의자가 있어야 앉을 수 있고, 책이 있어야 읽을 수 있고, 복권을 구입해야 당첨 가능성이 생기는 것처럼 혀도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본질을 발휘한다.


존재와 본질의 우선 순위를 망각한 채 마구 존재의 당위성, 당연함을 내 것이라 마음대로 강요하지는 않는지 생활 습관을 돌아봐야 한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염증厭症은 '몸이 싫어해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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