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단골 식당이 한 곳 있다. 평일에 가끔 아내와 찾는다. 자그마한 2인 테이블이 6개뿐인 곳이다. 셰프이자 사장이자 종업원인 60대 여사님은 무생채 같은 분이다.
그 집 시그니처 반찬이 직접 채를 썰어 매일매일 무쳐내는 무생채다. 신선하고 달근한 무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얀 밥 위에 올려 마냥 먹게 된다.
음식맛은 그 사람의 맛과 멋이 조화를 이룬 것인 게 분명하다. 그분은 표정이 온화하다. 전화 통화하는 음성만 듣고 있어도 평온해진다.
그런 듯 어찌할까, 저런 듯 어찌할까 하는, 여유가 넘치는 분이다. 그렇다고 전혀 아는 척하지도 않는다.
맛도 맛인데, 그런 집은 나도 아내도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한참 전 어느 날었나. 아내와 저녁을 먹고 일어나는데 자그마한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셨다.
메뉴에는 없지만 아이들 먹이려고 (집에서)했는데, 많이 해서 가져 나왔는데 남았다며, 남았다며 조금 나눠 주는 거라 강조하고, 또 강조한 '소고기뭇국'.
다음날 아침에 그 뭇국을 덥혀 밥 한 그릇을 그득 먹고 나왔던 기억이 어제 또 새롭게 일어났다.
어제 아내는 국산 서리태로 만든 콩국수, 나는 사골 칼국수를 먹었다. 역시 어제도 무생채를 작은 접시로 서너 접시는 먹었나 보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콩국수를 절반 정도 남기면서 콩물은 다 떠먹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주방에서 고개를 쏙 내민 무생채 여사님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을 보고 혼잣말처럼 말을 걸었다.
"콩물에 밥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어릴 적 콩가루를 먹고 싶은 마음과 밥을 먹으라 하는 엄마의 요구를 둘 다 해결하느라 자주 콩가루를 밥에 비벼 먹은 것은 많았다.
콩국수를 아내만큼 즐기지는 않지만, 우리 둘 다 콩국물은 참 좋아한다. 아니, 콩을 워낙 좋아라 한다.
콩밥은 물론 밑반찬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콩자반이다. 콩국수를 먹으면서 그릇에 남은 콩국물을 아까워라 하면서도 그런데 지금껏 콩물에 밥을 말아먹어 본 적은, 아니 그렇게 해보겠다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맛이 대단하다. 식감이 아주 부드럽다. 갈기 전 서리태의 맛과 향이 고스란히 포슬한 밥알에 스며들어. 한참을 씹으면 달큼한 맛이 깊게 배어 나온다. 반 공기만 말아먹었는데도 배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금방 올라온다.
무엇보다 무생채 여사님 덕에 오십이 넘어 처음으로 시도한 음식이 또 하나 생겼다. 자그마한 시도에서 즐거움이 자근거리는 경험을 만끽한 자체가 참 좋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다. 여름을 기대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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