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하지다. 이미 날은 충분히 더워지고 있고, 남녘에서는 이른 장맛비 소식도 들린다. 이제 본격적으로 더워질 일만 남았다.
살랑이던 봄바람에 실려 나부끼던 꽃잎들 사이를 거닐던 호사는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딸 아이가 좋아하는 여름꽃 능소화 넝쿨을 초록잎이 무성하게 덮기 시작했다.
슬쩍 지나쳐 가면 겨우내내 앙상하던 넝쿨이 그 아래 숨어 빼곰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나보다 더 봄날이 가버리는 걸 아쉬워 하는 나무가 눈에 자꾸만 들어 온다.
올해도 한때, 짧고 강렬하게 찰나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봄을 만끽하던 왕벚나무다.
잦은 봄비에, 바람에 꽃눈이 되어 바닥에, 차 지붕에, 철쭉에, 독일 붓꽃위에 내려 앉아 생명의 유한성, 젊음의 덧없음을 일깨워주었던.
그런데 여전히 이 봄을 쉽게 보내기가 아쉬운 가 보다. 올해는 더더욱 벚꽃이 진 자리마다 새까맣게 달라 붙은 버찌가 더 수북하게 매달린 걸 보면.
인도위에 떨어져 밟히면서도 어김없이 모든 존재가 변화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이치를 찐득하게 알려준다.
덧없이 사라지는 듯한 아름다움이 새로운 형태의 탄생이라는 것을, 바닥에 나 뒹굴며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려 장맛비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어디든 흘러 들어, 어떻게든 파고 들어 성대한 생명을 키워 낼 자리를 부여 잡고 기어코 키워낼 것이다.
그렇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환의 생명을 나이든 강아지는 연신 코로, 온몸으로 간절하게 들이킨다.
어릴적 처럼 낼름 낼름 입속으로 가져가진 못하지만 일부러 천천히 밟으면서 발바닥으로, 소리로, 냄새로 나도 생을 음미해 본다.
그러면서 벚나무 덕분에, 버찌 덕분에 존재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생명 자체는 무한히 이어진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 끝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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