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 종일 안방 베란다에도 햇살이 한가득 넘쳤다. 이중창 밖으로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몇 미리 떨어진 안은 햇살은 너무 좋았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 혼자 있었던 공간이라 윗옷을 탈의하고 선텐을 하듯 카페트에 엎드렸다. 허릿병이 생긴 이후 엎드리는 자세가 훨씬 더 편하기도 하고. 천천히, 천천히 누군가가 마사지를 해주듯이 등이 따듯하게 편안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아픈 허리를 핑계 삼아 공강 시간에 5층 건물을 나섰다. 힘들어도 많이 걸어야 한다. 지난주부터 매일 만 오천보 가까이 걷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앉았다 일어날 때 찌릿한 통증은 사라지고 있다. 아직은 욱신하는 통증은 남아 있지만.
5층 본관 건물에서 가장 먼 주차장 - 산막처럼 지어져 있는 어느 농부의 집과 초록색 울타리 하나 사이로 나뉘어 있다 - 으로 걸었다. 본관 건물 아래 운동장이 있고, 그 옆에 주차장, 그 주차장 살짝 아래 작은 주차장이 있다. 그리고 그 주차장을 지나치면 세 번째 자그마한 주차장이 있다.
이곳을 출근하기 시작한 뒤, 며칠 만에 차를 본관 건물에서 가장 먼, 세 번째 자그마한 주차장에 세우기 시작했다. 내려서 걷고, 퇴근할 때 걷고, 그 걷는 사이에 햇살을 받으려고. 조금 전에도 그 세 번째 자그마한 주차장까지 유턴, 유턴을 하면서 한참을 걸었다. 걷는 동안 귓가에는 운동장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햇살에 튕기듯 내 귀에 들어온다. 그 옆에서 몇몇 아이들은 낡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허릿병 덕분에라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늘 언제나 종종거리고 걸었던, 스스로는 파워 워킹이라고 핑계되면서. 하지만 가끔 욱신거리는 허리에 나도 모르게 어느 누구의 고향집 어귀에 나 앉아 있는 초로의 모습처럼, 뒷짐을 자꾸 지게 된다. 그러면 아주 의식적으로 손을 내리고 양팔을 흔들려고 애쓴다. 그러다 문득 느꼈다. 일광욕은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얘들이 먼저 앉아 있는 곳에 내가 불쑥 날아 들어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은 릴레이로 아프다. 주말에는 ㅈ이 네 번째 음성만에 확진이 되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번 주 내내 등교를 하지 못한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못 나오고 있는 ㅎ은 이틀 정도 지나니까 목소리가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목요일부터는 등교할 수 있다.
아침부터 그랬는데, 지금은 햇살이 참 좋다. 나를 빙 두르고 있는 산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라인을 따라 눈길을 돌려봤다. 새파란 색과 아직은 거뭇거뭇한 짙은 갈색이 어색한 듯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미세먼지도 없다.
조금 전에 우리 반 살림꾼 ㅇ이 목이 아프다며 조퇴를 했다. 지금은 공부를 하겠다고 그만두었지만, 한때는 잘 나가던 태권소녀였단다. 당당하게 이런저런 학급 일을 센스 있게 잘 찾아내고, 나에게 알려주고, 친구들을 다독이듯 호령한다. 신기하게도 남학생들이 말을 잘 듣는다. 내가 모르는 카리스마가 있다.
3월에만 서너 번. 아무런 이유 없이 마실 갔다 오다 들르는 것처럼, 교무실에 왔다. 그냥 왔다. '샘한테 놀려 왔어요'라고 한다. 잠을 푹 자고 오는데, 얼굴에 피곤함이 거의 없다. 그래서 더욱 건강해 보인다.
2km를 넘긴다고 알려 준다. 한 바퀴만 더 걷고 다시 5층으로 올라가야지, 하고 발을 작은 주차장 언덕 위로 옮겼다. 그곳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원래 주인들은 어느새 날아가고 없다. 무슨 사이었을지 모르지만, 참 보기 좋다. 아마 친구겠지 싶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걸 봐서는. 부부였으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보고 있었을 텐데. 돌아가신 새 박사님에게 여쭤보지는 못하지만, 내편 한대로 생각해 본다. 아니, 어쩌면 나이 한참을 같이 살아온, 친구 같은 부부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요즘은 부쩍 일기예보를 찾아본다. 햇살이 있는지 없는지를. 햇살이 찾아 들지 못하는 5층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은 넘쳐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계속 아프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햇살을 꿈꾼다. 햇살을 따라 움직인다. 한 달 정도만 더 지나면, 선크림을 조금이라도 사용해야겠지만. 월요일, 화요일 오후는 꼭 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겠다.
문득 언젠가 아내가 집에서 공부하는 딸한테 한 말이, 혼잣말처럼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제는 왜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네'
라는 말은 쓰는 게 아니라고. 도저히 이해가 되려면, 몇 년 몇십 년을 따로 살아온 시간, 그 시간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만큼이라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연을 들어 보고, 내 이야기를 하는 시간들이 필요해도 어려운데, 한두 번 보고, 말하는 것 잠깐 듣고, 외모 살짝 보고 그러면 안 된단다.
일광욕하는 까치처럼 친구 같은 부부로 익어가기 위해 서로에게 필요한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내일도 이 햇살이 친구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아픈 아이들에게도, 묵묵히 또 하루를 채우는 아이들 한테도 가득가득 넘쳐나기를 빌어 본다. 그리고 구름이 햇살을 가렸을 때도, 햇살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다음 햇살을 여유롭게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그들에게 넘쳐나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