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Michael Held연민과 사랑은 풍랑이 일지 않는 잔잔한 바다 위 배에서는 둘 다 선한 감정이다. 그러나 차이는 풍랑에서 드러난다.
연민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안에서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상을 바라보며 갖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구할까 말까 , 구할 수 있을까 하며 수없이 ‘잰다’.
안전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시선을 두었다, 거두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연민은 그렇게 홀로 ‘머뭇’ 거린다.
이 감정의 본질은 '상대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전한 내 공간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기 때문이다. 잠시 위로를 건넬 뿐 그의 고통에 젖지는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힘내세요!’라고 댓글을 단 후 ‘나는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라는 도덕적 만족감을 얻는데 머무를 위험도 내포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상대를 ‘부족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폭력성을 나타내지 않으면 연민 자체가 해롭지는 않다. 위로를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는 직접 뛰어들 ‘용기’를 훈련하는 인간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던지는 모든 ‘행위’다.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대상을 그냥 바라만 보지 못한다. 재지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뛰어든다. 자신이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감정의 구조대를 자처한다.
안전한 배 안에서도 풍랑 속에서도 나란히 어깨를 기대고 함께하려 한다. 수평적이며 쌍방적이어서 누가 더 낫거나 우위에 있지 않다. 사랑은 그렇게 언제나 ‘꾸역꾸역’ 함께 걷는다.
이 감정은 '너의 문제'나 '나의 도움'이 아닌, '우리'라는 공유된 현실과 경험에 있다. 사랑은 풍랑 속에서도 서로를 끌어안고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우리 we라는 우리 cage'(주 1)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갇힌 사랑은 고인 물처럼 탁해지기 마련이다. 사랑도 흘러야 늘 맑다. 우리 we안에서도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연민은 사랑이 될지도 모를 씨앗 중의 하나이고, 사랑은 연민이 낙과하고 남은 열매이다. 그렇기에 연민에는 사랑의 감정이 함유되어 있고, 사랑을 둘러싼 비가림 포장지가 연민이다. 그렇게 이 둘은 서로를 깊이 발효시킨다. ❤️
_주1> 이어령, 이어령의 말1, 2025, 세계사, p.313
https://blog.naver.com/ji_da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