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책

[ 언어와 나의 세계 ] 49

by 정원에

종이는 잘린 나무의 고요한 사체(死體)다.



한때 바람을 받아 흔들리고, 새들의 쉼터가 되던 나무가 이제는 하얗게 눕혀져 세상의 말을 담아낼 준비를 한다.


종이는 침묵 속에서 기다린다. 누군가의 손끝이 그 위에 흔적을 남기기를, 누군가의 생각이 자기 안에서 피어나기를, 누군가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흔들어 놓기를.



책은 종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사상의 숲이다.


잉크로 새겨진 문장들이 뿌리가 되어, 읽는 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생명의 뿌리를 내린다. 그 순간, 잘린 나무는 다시 살아난다.


책은 나무의 생명을 의미로, 존재를 지혜로 환생시킨다. 그렇게 나무는 인간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쓰러져 누운 종이를 다시 꼿꼿하게 세우는 힘, 영원히 인간 곁에서 서 있을 수 있는 에너지를 불어넣는 책.


‘소멸된 자연’이 인간의 사유 속에서 부활하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과 다시 호흡하는 행위, 즉,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않게 만드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잘린 나무가 다시 살아나듯, 인간은 책을 통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무에 둘러싸여, 나무를 끌어안고, 나무와 뒹굴며, 나무의 숨결을 만지는 시간이 그저 황홀하기만 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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