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래

[ 언어와 나의 세계 ] 99

by 정원에

인생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여행’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여행에는 아주 훌륭한 가이드가 있다는 점을 더 자주 잊곤 한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런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1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는 늘 두렵고 막막하기만 할 때마다 고개를 들어 부. 모. 를 떠올리면,

그 막막함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말이다.


부모의 주름진 손, 희끗한 머리, 침침해진 눈은 이미 내가 갖기 시작한 신체적 미래다.

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부모의 노화 과정은 '내 미래의 예고'편과 같다.


여기에 누구나 다가 올 퇴직을 하고 겪는 상실감,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느끼는 빈 둥지의 외로움.

이것은 지금 당장은 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내게 도착할 ‘확정된 미래’다.


그래서 부모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의 '나'를 만나러 가는,

도로 위의 여행자다.


도로에서 뒤따라가는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며 빨간 불이 들어온다. 그걸 보면 나도 속도를 줄인다.


앞차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곧 내 앞에도 닥칠 굽은 길이나 장애물을 앞차가 먼저 몸으로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늙고 병들어가는 과정, 혹은 삶의 끝자락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나를 잘 봐라. 이것이 네가 앞으로 걷게 될 길의 끝자락이다.”


그들은 내 인생의 선발대로서,

삶의 종착지라는 나의 가장 엄연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거다.

다만, 그 미래를 변화시킬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있을 뿐이다.

결국 부모라는 존재는 시간의 뫼비우스 띠와 같다.


‘나’는 그들의 과거(젊은 날)로부터 왔고,

‘나’는 그들의 현재(늙음과 죽음)를 향해 간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사이에 ‘과거와 미래’는 서로에게 공존한다.


부모에게 짜증을 내거나 그들의 늙음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나의 늙고 약해질 미래를 마주하기 싫은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부모를 ‘미래의 나’로 인식하는 순간,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경외하게 된다.


이처럼, ‘부모의 과거가 내 미래가 된다’는 말은 결국

시간을 잇는, 완벽한 이해와 용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지나갔든, 지금 겪고 있든,

앞으로 다가올 모든 희로애락은 이미 그들의 과거 속에서

눈물과 땀으로, 깊은 한숨과 소소한 기쁨으로 써 내려간 기록들이니까.


그러니 그 희로애락 자체보다

그것들을 안고 보내는 마음이, 태도가


‘나’도 모르게 그들의 과거와 겹쳐지는 순간,

부모를 ‘나와 다른 세대’가 아니라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서툴지만 최선을 다했던 한 인간’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면 더욱 부모처럼,

부모를 처음 해보느라 여전히 서툰 ‘나’란 부모 역시 내 아이들도

락(樂)이 왜 희, 로, 애 다음에 쓰여 있는지 일찍 깨닫기를 바라게 될 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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