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구석,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채 덩그러니 놓인 우산을 본다. 돌돌 말린 채 몇해째 그대로인 것들도 서너개나 된다.
며칠째 맑은 날이 계속되자, 그 우산은 그저 거치적거리는 짐짝에 불과했다. 늘 만만하게 정리 대상 우선 순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종종 삶의 어떤 가치들을 이 ‘맑은 날의 우산’처럼 대하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당장 눈앞의 성과나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 투박한 진심이나 오래된 인내심, 혹은 곁에 있는 익숙한 사람들을 구석으로 밀어두는 것처럼.
그러다 예고 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하늘이 뚫린 듯 비가 퍼붓는 순간, ‘나’의 태도는 180도 돌변한다. 방금 전까지 발로 툭툭 치던 그 우산을 허겁지겁 찾는다.
이때 우산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다. 우산살이 한두 개 부러져 덜렁거려도, 천에 작은 구멍이 나 있어도 상관없다.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만 있다면, 그 낡고 병든 우산은 세상 무엇보다 귀한 ‘구원’이 된다.
삶의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평소에 ‘보잘 것 없다’고 무시했던 것들이, 인생의 위기(비)가 닥치면 가장 ‘절실한’ 존재로 다가오니 말이다.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이다.
잔소리 같던 부모님의 안부 전화가 힘든 날엔 유일한 위로가 되고,
고리타분해 보이던 원칙이 유혹의 순간엔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되며,
실패했던 과거의 경험이 더 큰 시련 앞에서는 단단한 굳은살이 되어준다.
종종 당장의 부족함 때문에 괴로워한다. “왜 이렇게 구멍 난 곳이 많을까?”, “마음의 뼈대는 왜 이리 쉽게 부러질까?”
그럴때면, 비 오는 날의 우산을 떠올려 본다. 살이 휘어진 우산도, 색이 바랜 우산도, 여전히 누군가의 어깨를 젖지 않게 해줄 수 있다. 완벽하고 팽팽한 새 우산만 비를 막는 것이 아니다. 상처 입은 우산도 우산으로서의 소명을 다한다.
‘나’의 상처와 결핍은, 쓸모없는 존재라는 증거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우를 견뎌낸 훈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갑작스럽게 비에 젖어 본 사람만이, 우산이 없는 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만이 우산 상태와 관계없이 내어줄 수 있다. 가장 낡은 것들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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