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온기

[ 언어와 나의 세계 ] 108

by 정원에

장작 타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사라진 현대의 부엌. 그곳은 이제 ‘전기(電氣)’가 지배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버튼 한두 번, 터치 몇 번으로 불이 켜지고,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요리가 완성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완벽하고 효율적인 이 공간에서 종종 가장 큰 ‘허전함’을 느낀다.


옛날, 장작의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면 마른나무가 필요했고, 불씨를 살리기 위한 부채질이 필요했다. 물이 끓기까지는 하염없이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맛을 지켜내야 했다.


눈도 코도 매웠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가족의 안부를 묻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눠 먹던 음식들로 ‘관계의 온도’는 아궁이보다 더 달아올랐었다.

하지만 현대의 인덕션과 전자레인지는 이 ‘기다림’을 삭제했다. 그러면서 전기는 시간의 여유를 선물했지만, 그 시간 동안 서로의 눈을 보는 대신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전기(電氣)는 차갑다. 오로지 ‘결과’만을 위해 온기 없이 달린다. ‘효율’이 독재다. 그러는 동안, 과정의 수고로움이 사라진 자리에, 관계의 끈끈함도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 흔했던 ‘성냥’을 떠올려 본다. 거친 마찰면과 머리를 맞대고 ‘확’ 긁어야 불꽃이 인다. 옛 부엌의 온기는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때로는 티격태격하며 만들어내는 마찰열과 같았다.


하지만 전기의 부엌은 스위치로 작동한다. 켜거나, 끄거나. 중간이 없다. 현대인의 관계도 비슷해졌다. 마음에 안 들면 차단하고, 필요할 때만 접속한다.

서로 부대끼며 온도를 높이는 과정(마찰)을 피곤해하며, 깔끔하고 쿨한 관계만을 선호한다. 아니면 말고다. 될 때까지 해보는 게 쉽지 않다. 이 냉기가 부엌에서 전염된 게 분명하다. 사람은 먹는 대로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다시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할까?


아니다. 전기의 편리함 위에서 새로운 방식의 온기를 찾아야 하는 거다. 그 해답을 현대 부엌의 상징인 ‘인덕션’의 원리에서 엿볼 수 있다.


“인덕션은 스스로 뜨거워지지 않는다. 냄비와 공명해야 열을 낸다.”


인덕션 상판은 불꽃을 내뿜지 않는다. 대신 자기장을 통해 냄비 자체를 진.동.시켜 열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에 필요한 ‘세련된 온기’의 은유다.

장작의 부엌에서 만들어낸 온기가 내가 활활 타올라 주변을 덥히는 희생의 불꽃이었다면, 전기의 시대에 필요한 온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진동시키는 공감’이다.

전기의 부엌에서 밥은 기계가 짓는다. 하지만 그 밥에 ‘의미’를 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장작의 부엌에서처럼 현대의 부엌 역시 가장 필요한 온기는 ‘눈 맞춤’과 ‘대화’라는 보이지 않는 전기 신호다.

스마트폰 충전기만 찾을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방전된 가족의 마음을 충전해 주는 곳. 장작은 사라졌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인덕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서로의 마음을 진동시켜, 차가운 도시 생활 속에서도 식지 않는 따뜻한 밥상 같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온기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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