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스마트폰 화면을 닦고, 주기적으로 세차를 하고 입던 옷을 세탁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라는 그릇에 끼어 있는 기름과 때는 방치하곤 한다.
몸에 끼는 기름과 정신에 끼는 때,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정체된 것들’이다.
이것들을 걷어내는 행위는 단순한 다이어트나 공부가 아니라, ‘나’를 흐르게 만드는 의식이다.
몸에 쌓이는 지방,
즉 ‘기름’을 단순히 체중계의 숫자로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몸에 낀 기름은 ‘사용되지 않고 고여버린’ 과잉의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태우지 못한 에너지의 찌꺼기다.
싱크대 배수구에 기름을 계속 부으면 결국 관이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몸도 마찬가지다. 편안함만 추구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혈관과 근육이라는 도로에 찌꺼기가 쌓여 ‘순환’을 막는다.
기름은 불(Fire)을 만나야 녹는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린다는 것은 내 안의 엔진을 가동해 불필요한 잉여물을 태워버리는 행위다.
몸에 기름이 끼지 않게 운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드러나는 몸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의 내부가 녹슬지 않고 언제든 부르는 곳으로, 원하는 곳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기동성’을 확보하겠다는 자유의 선언이다.
목욕탕에서 밀어내는 ‘때’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죽은 피부 세포, 즉 ‘각질’이다. 한때는 나를 보호해 주던 피부였지만, 수명을 다해 떨어져 나가야 할 ‘과거의 나’다.
정신에 때가 낀다는 것은,
유리창에 뽀얀 먼지가 앉는 것과 같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정신의 창이 더러워서 세상을 삐딱하게 보거나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편견, 고집, 어제의 후회가 덕지덕지 붙어 정신의 시야를 가린 거다.
몸의 때를 밀기 위해 거친 타월이 필요하듯, 정신의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사유’라는 마찰이 필요하다. “이게 정말 맞나?”, “나는 왜 화가 났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밤낮으로 벅벅 문질러야 한다.
정신의 때를 벗기기 위해 사유한다는 것은 어제 생각의 각질을 씻어내고, 오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새살 돋움’의 과정이다. 정신의 목욕을 늦게 할수록, 오래도록 문질러야 한다.
잘 도는 몸과 맑은 정신.
이것이 기름과 때를 경계하며 매일 땀 흘리고 사유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몸에 기름끼지 않게, 정신이 때 끼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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