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껄 웃으며 마음껏 먹어라
[ 아빠의 유산 ] 59
아이야.
우리의 삶을 거창한 전쟁터가 아니라, 고요한 양궁장이라고 상상해 봐. 그럼, 활을 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튼튼한 활이겠지. 인생에서 ‘활’은 곧 너희 자신이다. 아빠는 젊은 날,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힘에만 집착했었다.
하지만 좋은 활은 당길 때보다 쉬게 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 활시위를 24시간 당기고 있으면 활대는 부러지고 말아. 운이 좋아 부러지진 않더라도 활의 탄성이 약해지지.
왜 이말을 하는지 알겠니? 너희가 삶의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화살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해 활의 탄성을 회복하는 ‘거궁(활을 들어 올림)’의 시간이란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 탄력이 없는 활로는 아무것도 쏠 수 없으니까.
활 시위를 당길 때, 우리는 저 멀리 있는 표적을 노려본다. 이 대목에 중요한 ‘인생 스포’가 있어. 그건 말야, 표적은 화살이 날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점일 뿐, 너희의 가치를 매기는 점수판이 아니라는 사실이지.
많은 사람이 10점 만점인 과녁(성공, 돈, 명예)에만 시선을 고정하느라, 정작 활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끝이 떨리는지조차 모른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고 했어. 이 말은 표적을 맞히지 못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라, 표적을 향해 화살을 겨누는 그 치열한 순간 자체를 사랑하라는 뜻이란다.
엊그제 새해 인사를 나눌 때 세웠던 것처럼, 목표는 선명하게 세워라. 하지만 그 목표가 너희를 잡아먹게 두지는 마라. 화살은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바람과 중력이라는 세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법이니까. 명확하게 바라보되 얽매이지 않는 시선!
가장 어려운 단계가 바로 활시위를 놓는 순간, 즉 ‘발시’다. 아빠가 책에서 읽고 무릎을 쳤던 문장이 이거야.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화살은 자유롭게 날아간다.”
우리는 너무 자주, 쏘기도 전에 ‘빗나가면 어떡하지?’를 걱정하거나, 쏘고 나서 ‘아, 조금만 더 위로 쏠걸’ 하며 후회한다.
하지만 아들아, 딸아. 이미 손을 떠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의 냉정한 물리 법칙이자 가장 큰 자유란다.
네가 쏘아 올린 노력(화살)이 세상이라는 바람을 타고 어디에 꽂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10점 과녁에 꽂히기도 하겠지만, 엉뚱하게도 옆집 담장에 꽂힐 수도 있겠지. 그런데 살아보니, 그 엉뚱한 담장 밑에 예쁜 들꽃이 피어있기도 하더구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오늘 편지에서 아빠가 이 편지의 끝에 너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란다.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지. 참 멋지면서도 늘 비장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아빠는 이 말을 아빠스타일로 해석해서 너희에게 주고 싶어.
“진인사 대(충) 천명”
최선을 다해 활을 쏘았다면(진인사), 결과는 하늘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대충 잊어버리라는(대천명) 것이다.
너희가 온 힘을 다해 쏘았다면, 그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꽂히든, 바닥에 떨어지든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활 쏘느라 에너지를 다 썼으니 배가 고플 것이다.
10점을 못 맞췄다고 울기보다는, 빗나간 화살을 주우러 가는 길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줍는 게 낫고, 그마저도 없다면 ‘폼 하나는 국가대표였다’고 껄껄 웃으며 양배추찜이라도 마음껏 먹는 게 진짜 고수다.
삶은 명중의 횟수가 아니라, 빗나간 화살을 주우러 가는 너희의 뒷모습이 얼마나 씩씩한가에 달려 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당기고, 미련 없이 놓는 연습을 마음껏 해 보거라.
화살은 이미 떠났더라도, ‘오늘’도 수고한 너희의 저녁은 언제나 푸짐하고 맛있어야 하니까!
너희의 영원한 응원군, 아빠가.
p.s
오늘 하루 일이 계획대로 안 풀렸니? 그럼 지금 당장 가장 비싸고 맛있는 치킨을 시켜라! 화살은 빗나가도 배는 고픈 법이고, 닭다리를 뜯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무조건 승리자니까! (단, 계산은 아빠 카드로 해도 좋다. 딱 오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