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를 사랑하는 기술

[ 사유가 머문 자리 ] 4

by 정원에

○•_살아있는 것들의 무례함에 대하여

정지해 있는 사물은 안전하다. 그것들은 예측 가능한 궤도 안에 머물며, ‘나’를 자극하거나 시야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그 세계는 언제나 질서 정연하고 매끄럽다.


그러나 그런 ‘정지’는 때로는 부패의 전조이거나, 이미 생명이 떠나버린 빈 껍질의 증거일 때가 있다.

반면, 살아있는 것들은 늘 팔딱거린다. 그(것)들은 예고 없이 물을 튀기고, 날카로운 지느러미 끝으로 힘을 다해 손을 찌른다. 쉼없이 선홍빛의 줄무늬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밭은 생존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러한 팔딱거림이 간혹 ‘무례함’으로 여겨지며 불쾌해지는 건 왜일까.


그랬다. 남의 어항속에서 팔딱거리는 생선은 싱싱하다고, 물이 좋다고 환호하면서 정작 내 어항속의 그(것)들은 언제나 ‘나’의 방식대로, 죽은 듯이, 고분고분하게 움직이기만을 고집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노예의 도덕에 잠식당해 있(었)다.

하지만 정신의 고도가 높은 자, 즉 뛰어난 요리사의 눈은 다르다.

그는 팔딱거림이 뿜어내는 거친 마찰음과 저항을 적의(敵意)로 해석하지 않는다. 물을 튀기는 것은 공격이 아니라 호흡이다. 손을 찌르는 것은 거부가 아니라 생존의 몸부림이다. 그는 그 불편한 에너지를 거세하는 대신,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삶이라는 도마 위에서 최고의 요리로 승화시킨다.


매끄럽기만 한 관계는 안전하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오는 깊이는 없다. 예의 바른 생선이란 식탁 위의 죽은 생선이다. 서로의 거친 비늘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불꽃, 그 소란스러운 마찰을 발효시켜야 생의 맛은 깊어진다.

위대한 영혼을 지닌 주인은 무례함 속에서 가장 신선한 생의 재료를 찾아 낸다. 단순히 나쁜 성품이 아니라,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한 생명력의 폭발을 엿보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큰 죄악은 ‘거침’이 아니라 ‘나약함’이다.


어디에서는 야생마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죽은 생선이 되기도 하는, 이 둘은 모두 다 ‘나’다. 그래서 '나'의 주인은 '나'여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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