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와 파티

[ 사유가 머문 자리 ] 5

by 정원에

○•_평등은 진창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은 곧 ‘나’ 자신이 낮은 곳에 존재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의미한다고 여기기에, 자주 본능적으로 ‘평등’이라는 수평계를 꺼내 들고 마구 흔들어 댄다.

이때 가장 손쉽게 그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중력을 따르는 길이다. 즉, 위로 올라가는 고통, 수고로움 대신, 위에 있는 대상을 끌어내린다. 끌어내리지 못하면, 그가 밟고 서 있는 사디리를 효과적으로 걷어차는 기술을 연마하느라 쓸데 없는 열정을 허비한다.


이것은 일종의 르상티망이다. ‘나’의 무기력을, 무능을, 무례를 감추기 위해 타인의 빛을 꺼버림으로써,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이제 우리 모두 똑같아졌다’고 안도하는 ‘양동이 속의 게’가 되는 것이다.


반면, 영혼이 고귀해질때는 타인의 위치를 ‘나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잠시 스며 나온다. 그럴때면, ‘자일 파티(rope party)’를 흠뻑 즐기는 팀원이 되어, 앞선 타인의 로프가 뒤처진 ‘나’를 끌어올리는 구원의 밧줄이라고 인식한다. 깍아지른 암벽을 오르는 어려움을 자처하는 것이다.


서로 몸을 밧줄로 연결한 뒤, 선두는 올라가면서 뒤따르는 사람을 당겨주고, 뒤처진 사람이 힘을 내면 전체 속도가 올라간다. 각자의 ‘빛’을 서로 이정표 삼아 ‘나’의 영혼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크고 작은 성장에는 타인의 탁월함을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나’ 또한 도달할 지점의 깃발로 받아들이던 순간 순간의 의욕 덕분이었다.


맞다. 진정한 평등은 어둑침침한 늪지대의 고요함이 아니라, 나무들이 저마다의 높이로 태양을 향해 뻗어가느라 내는 숲속 웅장한 소음들간의 조화와 같다.


중요한 것은 ‘평등 그 자체’가 아니다. 평등을 외치는 동기가 ‘나’의 무능함의 가면을 쓰려는 건지, 탁월함의 베일을 벗기려는 건지에 있다.


그러니 이제는, ‘게’가 될지 ‘파티’를 즐길지 선택해야 할때다.


라이팅 레시피3.jpg


작가의 이전글비린내를 사랑하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