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안에서 새까맣게 뭉친, 바싹 마른 잎사귀 하나를 한참 들여다 봅니다. 깊은 우주를 유영하듯 이리 저리 일렁이다 서서히 가라 앉습니다.
자신의 몸을 최대한 작게, 단단하게 말아 웅크리고 있는 저 작은 잎 하나에 얼마나 많은 계절이 스쳐 갔을까요.
비탈진 산등성이에서 견뎌낸 거친 비바람, 한낮의 뜨거운 볕, 그리고 차가운 서리의 기억까지. 그 모든 시간은 잎사귀 안에 촘촘한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있을 겁니다.
뜨거운 물을 붓는 그 순간만큼은 어쩌면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뜨거움 덕분에, 언제까지고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시커먼 몸을 천천히 풀어헤칩니다.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긴장이 풀리며, 그 안에 감춰두었던 숲의 향기와 흙의 기억이 붉은 찻물로 배어 나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우러남’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문득 찻잔을 앞에 두고 나를 돌아봅니다. 나는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말라비틀어지고 있는 걸까요. 내 안의 떫은맛과 날 선 감정들은 시간이라는 효소를 만나 부드러워졌을까요. 혹여 나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금세 색을 내보이는 티백처럼, 그럴싸한 흉내만 내며 깊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부끄러워집니다.
발효란, 썩는 것이 아니라 익는 것임을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삶은 알고 있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찻잎이 뜨거운 물을 만나야만 자신의 가장 깊은 맛을 내어놓듯, 내 삶에 찾아오는 뜨거운 순간들도 결국은 나만의 고유한 향기를 세상에 퍼뜨리기 위한 과정일지 모릅니다.
지금 나의 웅크림이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더 깊고 진한 향을 품기 위한 기다림이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내 삶의 찻잔에도, 떫은맛은 사라지고 은은하고 묵직한 단맛만이 감돌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말할 수 있겠지요. 아프게 웅크렸던 시간 덕분에, 이토록 향기로운 사람이 되었노라고. ❤️
_내 마음의 한 문장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의 떫은맛을 뱉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마저 끌어안아 그윽한 향기로 바꾸어내는 발효의 기다림이다.”
https://blog.naver.com/ji_da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