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의 경계

[ 시작(詩作) ] 10

by 정원에

언제나 가득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그 갈증이 실패인 것은 아니다


수만 명의 연인을 스쳐 지나쳐도

우리는 늘 한 사람분의 외로움을 앓고

수천 권의 책을 읽고 덮어도

마지막 장의 허기는 남는 법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손마디에 박힌 세월이 말한다

얻지 못한 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 단지 아직 걷지 않은 숲길일 뿐이라고


충분함이란 항아리를 채우는 물방울의 수가 아니라

찰랑이는 수면 위에 부서지는 윤슬에도 내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대여,

손해를 계산하느라 저녁을 굶지 마라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생이라는

아주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들어와

제 몫의 노을을 구경하다 가는

가난하고도 풍요로운 관객일 뿐이니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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