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은 사람을 닮는다

[풀꽃들에게]9_텃밭.사람들 유랑기 5

by 정원에

5월 햇살 참 뜨겁다. 산책하는 팔등이 따끔하다. 하지만 그 덕에 5월 텃밭은 그득하다. 불과 한달여만이다. 3월말, 4월초에 허전했던 텃밭이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연초록이 이렇게 이쁜 색감이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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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T는 큰딸이 초등학교 교사이다. 정년이 3년 정도 남았다. 이제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싶지만 몸에 큰 병을 달고 사신다. 계단을 한번에 오르지 못한다. 아침에 인사를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같이 올라가면 미안해 하신다. 그래도 난 끝까지 같이 오른다.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김T에게 텃밭은 생명수같은 곳이다. 교직을 떠나서도 밭에서 이러저러 살다 가고 싶다고 하신다.


태T는 야구를 아주 좋아해서 절반 정도가 야구 이야기다. 그런데 학교 아이들한테 퉁퉁거리면서도 곰살맞게 잘 챙겨준다. 츤데레지 싶다. 모교 졸업생이라 아주 어린 후배들 잘 되라고 하는 선배 마음이지 싶다. 그런 모습처럼 농사는 일처럼 하지 않는다. 아주 효율적으로 한다. 진을 빼지 않는다. 밭에는 도라지, 부추를 심어 놨다. 무심하게 있으면 알아서 잘 크는 다년생들이다. 가끔씩 슬쩍슬쩍 건드려만 줘도 잘 큰다. 애들한테 대하듯 한다. 그 노하우를 지금에라도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허T는 전혀 운동을 할 것 같지 않다. 그냥 동네 돌아다니는 나같은 아저씨다. 나보다 두 살 위다. 그런데 아침마다 엄청난 운동을 한다. 위대한 의식처럼. 5층에서 내려다 보면 비슷한 시각에 철봉대에 나타난다. 그리고 잠깐 철봉대에 매달린다. 그냥 매달린다. 절대 힘을 줘 몸을 들어 올리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두 번을 매달린다. 그게 다다. 그런데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다. 텃밭도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내려온다.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풀이라도 뽑아야 되는가 보다. 그래서 동안인가 보다. 아등바등하지 않는 모습이 참 좋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모습은 비슷한 듯 다르다. 매일 아침을 출발하는 다짐이 다르고 매일 점심때 맞이하는 바람의 느낌이 다르다. 다시 매일 집으로 향하는 마음과 모습 역시 또 다르다. 그렇게 우리는 바람에 머릿결 흔들리듯 언제나 흔들린다. 하지만 밭은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물만 있으면 늘 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매순간으로 잘게 쪼개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한다. 그런 모습이 한결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사람이 밭을 닮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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