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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든 May 05. 2021

비 오는날 막걸리를 먹는 이유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날

"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지!"

   

    "비가 와서 먹었어요."는 자기 행동에 어쩔 수 없었다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범죄자의 범행 동기와 닮았다. 파전과 막걸리를 소비하고는 '모든 건 비가 와서 그랬어'라니, 무책임하다. 살인을 저지르고는 '나를 보는 눈이 이상했어요.', '요즘 일도 잘 안 풀리고 화가 나서 그랬어요.'라는 식이다. 물론 비가 오는 날 전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마치신 분들을 살인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비가 와서 먹었다는 그 문장에 설득력이 부족했달까?


    비가 오는 날이면 실제로 막걸리와 밀가루, 부침가루의 판매량이 비가 오지 않는 날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대형마트의 통계수치가 있다. 기름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부침개의 소리가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소리와 닮아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비가 오면 마음이 우울하고 쓸쓸해서 막걸리를 먹는다는 절대신의 답변도 있다. 밀가루는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밀가루를 섭취하면 혈당치가 상승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오늘은 연어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어 볼까' 

    

    에드워드 권님이 유튜브를 하고 계신다. 지금은 요리사 하면 백종원 선생님이 대명사처럼 떠오르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에드워드 권의 유명세가 가히 절정에 다다라 있었다. 그래서 나의 초등학교 영어학원 영어 이름도 에드워드(ED에드)였다. 지금도 영어 이름은 에드워드를 사용한다. 그런 에드워드 권님이 유튜브를 시작하고, 그의 연어 스테이크 레시피를 손 안에서 볼 수 있다니,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 롯데마트에 가서 홀그레인 머스터드랑 연어 한 덩이를 사 와야겠다. 큰맘 먹고 생크림도 사서 소스를 만들어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무슨 유전자에 새겨진 DNA 염기서열 마냥, 막상 마트에 가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실제로 맞아 버리고, 흠뻑 젖어있는 땅을 목격하고, 웅덩이마다 고여있는 빗물에 발을 조금 적셔보고는 생각했다. 


'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지!'


    파전은 전에도 몇 번 만들어 봤으니까 백종원 님 레시피를 보면 되고, 비빔국수를 같이 만들어서 먹어야겠다. 집에 있는 소면도 다 떨어져서 언젠가 사야 했으니까. 부추랑 소면, 우유랑 계란만 사서 집에 돌아가야겠다. 아! 막걸리도 사야지, 나는 백종원의 제자는 아니지만 백종원 님이 박유덕의 골목 막걸리를 극찬하신 이후로 항상 골목 막 거리를 사 먹는다. 정말 맛있다! 끝 맛이 깔끔하고, 은은하게 달콤해서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사실 많이 먹지도 못한다. 요리를 취미로 삼고, 관심이 증가할수록 마트에 가면 향신료 코너에서 발을 떼기가 어렵다. 생강가루나 강황가루, 파프리카 가루, 시치미, 큐민... 등등 요리할 때 들어가면 맛을 완전 반전시키지만, 조금 들어가기 때문에 사기에는 아까운 향신료들이 매번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나한테 말을 건다. 그래서 나는 그 앞에 서서 너희들이 얼마나 나에게 필요한지 어필을 요구하는데 결국 내가 을이라서,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넙죽 인사를 드린다. 다음 생일 선물 제1 위시리스트는 향신료 세트다. 


    파전을 만들 때 백종원 선생님의 킥(요리의 차별점)은 멸치액젓과 마른 새우다. 나는 집에 있는 마른 홍새우를 사용했는데 마른 새우 반찬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파전에 들어 있는 새우는 맛있게 잘 먹는다. 멸치액젓은 요리에서 잘 안쓸 것 같지만, 은근히 많이 쓰인다. 액젓이 결국 맛의 엑기스 느낌이라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액젓을 넣으면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리고 청양고추도 많다 싶을 만큼 썰어 넣으면 질리지 않고 매콤하게 먹을 수 있다. 매운맛은 기름기와 상극이라 매운맛이 기름기와 만나면 그 힘이 약해진다. 너무 과하면 당연 과유불급이겠지만, 한계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청양고추는 다다익선이다. 


    파전을 만들 때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를 사용했으니, 비빔국수는 에드워드 권님의 레시피를 이용했다. 에드워드 권님의 킥은 육수다. 고추장3 식초2 설탕1 맛술1 간장1 다진마늘1 참기름1.5 이렇게 섞어 놓은 양념장에 육수를 50ml 넣어서 농도를 맞춘다. 육수가 없다면 그냥 물을 넣어도 된다. 나는 멸치다시팩을 다 써버려서 물 500ml에 치킨스톡 조금이랑 소고기 다시다 조금 넣고 끓여서 육수라 치고! 사용했다. 그리고 김치를 잘게 썰어서 설탕과 참기름 참깨를 넣고 섞어서 고명을 준비한다. 참고로 참깨는 꼭 갈아서 넣어야 한다. 절구가 없어도 손끝의 힘으로 비틀면서 넣으면 충분하다. 그렇게 해야 참깨를 넣은 이유가 살아난다. 


밀가루 + 밀가루 + 막걸리 = 수면제

    자기 자식 미운 사람 어디 있겠냐만,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이 너무 맛있다. 물론 많이 실패했었고, 지금도 처음 만든 음식이나 요리 과정에서 잠깐 집중을 놓치면 먹어주기 힘든 음식이 탄생하기도 한다. 냉장고에 넣어둔 막걸리를 꺼내와 요리조리 흔들고 병을 꾹꾹 누르는 과정을 거친 후에 개봉한다. 비빔국수는 내가 먹은 레시피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다. 파전도 처음으로 1인분을 만들어 봤는데 간조 절을 잘했다. 막걸리는 밥그릇에 4잔 5잔 정도 먹으니 한 병이 뚝딱이다. 한잔 한잔 먹을수록 머리가 헤롱 헤롱 거린다. 사실 기분 좋게 먹고 나서 책을 좀 읽다가 자려고 했는데, 지금 이 상태라면 조금 위험하다. 막걸리는 분명 6도인데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모르겠다. "막걸리 먹으면 훅 간다."라는 말이 정말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10시 전에 잠든 건 21년 들어서 처음인 거 같다. 매번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늦게 잤는데 9시쯤에 침대에 누워서 잠들었다.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꿈을 꾸고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비몽사몽 눈을 감고 '아 이래서 비 오는 날 선조들이 막걸리를 먹었겠구나.'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이면 밭에 나가서 일도 못하니까 집에서 막걸리랑 전을 먹으면 그걸로 넉다운이다. 기분 좋게 한숨 자고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마음일 테다. 유전자에 아로새겨있는 선조의 지혜를 받들어 비 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을 먹은 우리 모두, 오늘의 모든 것은 빗물에 흘려보내자. 오늘의 우울함, 오늘의 쓸쓸함, 오늘의 걱정, 근심 모두! 우리가 오늘 막걸리를 먹은 이유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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