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MACHT FREI

바람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by 김가든

젊은 시절에는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고, 늙고 나면 돈은 많지만, 시간은 없다. (늙는 다고 모두 돈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언제 이렇게 여행을 가겠냐 라는 마음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서 친구들과 비행기와 숙박을 예약했다.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고 한국을 떠나 유럽에 도착한 지 9일째 되던 날 우리는 뮌헨에서 아침을 맞았다. 어제 호프집에서 맥주를 죽어라 퍼부어 마셨던 사람들 치고는 다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하나뿐인 화장실을 다 큰 남자 4명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샤워 순서를 기다리며 밖에서 담배를 한대 태웠겠지만, 오늘은 담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현재는 금연에 성공했다.) 오늘 우리가 가기로 예정한 곳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부터 동양인 남자 4명이 정장 차림으로 기차를 기다린다. 동양인 타이틀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훔치는데 “정장 입은”이 추가되어 시선은 두배가 된 기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짐이 많은 유럽여행에 정장을 챙겨 온 것은 이번 여행의 콘셉트이었다. 한 도시에서 한 번은 정장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자는 나의 제안이다. 한두 번 입고는 잘 지키지 못했지만, 뮌헨에서 오늘 하루를 정장 데이로 선택한 것은, 그저 멋을 위함이 아니라 예를 위해서였다. 오늘의 행선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적 특성일까 다들 마음 한편에 엄숙함이 드리웠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예를 갖춰 다하우 강제징용소로 출발했다.


유난히 하늘이 청량한 다하우 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딱 봐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정류장에서 같이 따라서 내리면 다하우 강제징용소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기억의 길에 도착한다. 정문으로 가는 기억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점점 말을 줄여갔다. 나는 장난기가 많은 남성이라 의식적으로 말문을 막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유머러스한 말들을 내뱉을 것만 같았고, 워낙에 웃음이 많은 사나이지만 그 공간에서는 나의 웃음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입을 닫았다. 이어폰에서 어떤 노래가 나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리를 크게 올렸지만,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정문에 도착했다.

1550432111011-28.jpg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다하우 강제징용소의 철제 정문에 새겨져 있는 글귀이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의 강제노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변형한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강제수용소라고 하면, 아우슈비츠가 익숙할 테지만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독일에서 최초로 설립된 강제수용소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폴란드에 위치한다.) 가장 먼저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인근의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나온 것일까? 무리 지어 다니는 학생들이 보였다. 영어와 독일어로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는데 독일어는 문외한이라 그나마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한 영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챙겨 왔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나의 영어실력과 독일에서도 유용한 네이버 검색을 바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읽어 가다 보니, 주변에 친구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혼자였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모두 따로 박물관 구석구석을 걸었다.


다하우 강제징용소의 전시된 당시 자료들을 읽어 보면 하나같이 정말 디테일하다.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 신분의 국가에서 이렇게까지 진실되고 상세한 자료를 전시해 놓은 것이 신기했다.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 사람의 목숨에는 귀천이 없을 것인데, 우리는 생판 모르는 다른 민족의 홀로코스트에 슬퍼하기보다는 가깝게 지내던 한 사람의 죽음에 더욱 슬퍼한다. 다하우 강제징용소 역사박물관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나는 수십 년 전 그들의 삶을 몰래 훔쳐봤다. 수감자들이 어떤 삶을 살다가 잡혀왔고, 강제수용소 안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후에는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투명하게 모든 실상을 알려준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더 이상 그들은 나에게 머나먼 존재가 아니게 된다. 내가 그들의 삶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생각났다.


20190218_122302.jpg 우리나라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가 떠오른다.

그들이 수감되었던 공간과 숙소 하루 일과를 보냈던 노역장까지 살펴보면서 생각했다. '나라면 해방하는 날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잡혀온 사람들과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매일 이겨낼 수 없는 강도의 노동들. 어제까지 함께 일한 사람이 오늘 피 주검으로 발견되는 공간. 그 시체가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단 하나의 희망도 허락되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단 하루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 숨이 막혔다. 이곳에서도 나는 웃을 수 있었을까? 긍정을 잃어버리고 피폐해져 버린 나의 모습을 그리다 지웠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생각하며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자고 다짐했다. '내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면 내 주변에 누군가, 아니 당장에 나 스스로가 생각을 잃은 나의 모습에 치를 떨 테니까.'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했다. 이곳의 수감자들은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구름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구름은 담벼락을 넘을 수 있고, 총알을 피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구름이 되어 가족들 품으로 고향으로 자유롭게 가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초록빛의 상록수들이 길 양쪽으로 가지런히 줄지어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해줬다. 순간 세상이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는 순간 나는 그 시절 그 공간에 온 기분이 들었다. 십자가 앞에서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기도를 했다.


‘나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잔혹한 일들이 발생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여기서 죽어간 이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시고 이제는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구름처럼 자유롭게 하시며, 앞으로 이 세상에는 이렇게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멀리서 종교가 없는 친구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이다. 다하우 강제징용소를 떠나며 앞서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하늘의 구름과 함께 찍어 본다. 구름이 영혼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이제는 ARBEIT MACHT FREI가 아니라 WIND MACHT FREI, “바람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먼저 길을 나서는 친구들의 뒷모습
ARBEIT MACHT FREI가 아니라 WIND MACHT FREI, “바람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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