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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든 May 25. 2022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고

 고작 회사 하루 안 가는 걸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일인가? 점심시간 10분 산책을 하는 와중에도 동네가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지난주에 심사숙고 끝에 필름 카메라를 구매했다. 매일 바라보던 시선에서 또 다른 지경이 열린 기분이다. 평소 같았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구도로 바라보게 되고 상상하게 된다. 낡은 아파트, 그 앞에 정리된 자전거, 빨간 장미, 건물 틈 사이로 보이는 전철, 뜨거운 햇살만큼 가벼워진 옷차림, 그 사이로 나풀거리는 자유. (그것마저 찍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지원했던 회사 인턴 모집에 낙방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떠나고자 작성했던 지원서에는 다 티가 나나보다. 진짜 다니고 싶다는 마음보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이 얄팍한 소개서 안에 몽땅 드러난다. 그렇게 몇 군데 돌리곤, "아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아직 내가 할 일이 더 있나 보다." "여기서 했던 일들을 앞으로는 잘 정리해 둬야지, 이번에 갑자기 쓰려니 너무 버거웠어." 등등 전혀 의미 없는 도전은 아니었다.


 내일 휴가라는 부담감에 억지로 자리를 지키다 40분은 늦게 퇴근했다. 뭔가 일을 해두고 가야 할 듯한데, 자리만 깨끗하게 정리했다. 무언가 정리하는 건 역시 내 마음이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퇴근길 날씨가 몹시 좋다. 무작정 걷고 싶다. 전쟁기념관 까지? 효창 공원까지? 한강까지? 어디까지 걸어 볼까?

; '아 나 렌즈 사야지'

한 달 끼는 렌즈, 때 되면 착착 불편함이 느껴진다. 매번 찾아가는 안경집 사장님 나한테 왼쪽 오른쪽 눈 시력 다른 거 아냐고 또 문제를 내는데, "오른쪽" 오른쪽이 더 나쁘다고 했는데, 정답은 왼쪽이란다. 내가 혼자 맞출 때까지 매번 문제를 낼 테다. 내 눈이 어디가 더 나쁜지도 모르듯, 내 맘도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고, 의식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없기에 살아있음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자기 갈길 가는 사람들과 자동차, 스쿠터, 자전거, 떨어지는 땀방울, 소리치는 아저씨, 담배를 태우는 할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어머니. 쪼물쪼물 움직이는 사람들 그 생명 안에 넘치는 이야기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나를 떠나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 느껴졌던 날이 있었다. 손과 발을 스스로 묶어두고 눈까지 가리니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싶은 날이 있었다. 근데 오늘은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그게 신기해 미치겠다. 


 분명 모든 사람이 이렇게 극성을 떨지는 않을 텐데,  난 왜 이럴까? 모르는 사람한테 세상이 이쁘다고 알려주라고, 그러라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부쩍 친해진 친구에게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는데, 그게 위로란다. 아 그래서? 세상이 이뻐 보인 이유가 그래서?! 위로라니 출근하기 싫어서 빌빌 거리는 사람이 누구에게 위로를 한다. 재밌다. 쭉 늘어나는 치즈 같다.


 내일은 고작 회사를 하루 안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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