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베케

시즌2는 시즌1을 잊지 않았다.

by 여행작가드노

한겨울의 제주. 베케를 찾았다.

땅과 하늘, 사람과 건축이 어우러지며 자연과 인공이 교감하는 철학적 공간이었다.

정원의 설계자 김봉찬 대표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가드너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도시를 연결하는 정원의 역할을 고민하는 철학자다.


<정원과 건축, 자연을 담다>

“정원은 건축의 배경이 아닙니다. 정원을 위한 건축이 되어야 하죠.”

김봉찬 대표는 정원과 건축이 대등하게 대화하며 서로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만난 두 번째 베케는 원래 주차장이 있던 평지였다. 김 대표는 이곳에 분화구 같은 지형을 만들어 자연과 공간의 흐름을 살려냈다. “분화구 같은 이 지형은 단순히 눈에 띄는 디자인이 아닙니다. 땅의 원래 모습을 존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정원의 맥락을 형성한 것이죠.”

정원의 구성 요소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미를 극대화했다.


“직선과 곡선이 만나면, 서로가 가진 매력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건축물의 직선과 정원의 곡선은 서로를 보완하며 완벽한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베케는 건축의 직선적 구조와 땅의 유기적 흐름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하지 않을 것의 미학>

김봉찬 대표가 정원 설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은 바로 ‘하지 않을 것의 미학’이었다.


“정원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아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야 자연의 본질이 살아납니다.”

배추밭을 예로 들었다. 배추밭은 단순한 농작물이 심어진 공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땅의 선과 하늘의 빛이 어우러지는 풍경 속에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배추밭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디자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조화에서 나옵니다. 정원 설계는 그 조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죠.”


베케는 이러한 철학을 그대로 실현한 공간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 속에서 땅과 하늘의 조화가 돋보였고,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전해줬다.

“돈이 부족할 때는 디자인과 소재를 간소화하면서도 본질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연스러운 땅의 형태와 적은 비용으로 조성할 수 있는 요소들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죠.”


예를 들어, 베케 정원의 바닥재는 값비싼 돌이나 자재가 아닌 단순한 흙길과 자연석으로 꾸며졌다. 그는 이를 통해 정원이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

“예산이 부족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땅과 하늘, 그리고 자연의 흐름을 담는 것이야말로 정원의 본질이니까요.”


부족한 예산은 그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었고, 더 자연스러운 디자인으로 이끌었다.

<시간과 계절이 그리는 정원>

김봉찬 대표는 베케를 “시간과 계절이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정원은 고정된 공간이 아닙니다. 바람과 빛, 계절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살아 숨 쉬는 곳이죠.”

겨울의 베케 정원에서는 낙엽이 진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며 공간을 채웠다. 낙엽수의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겨울 정원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잎이 떨어져야 가지 사이로 하늘이 들어옵니다. 겨울 정원은 이처럼 낙엽수의 가지와 하늘의 빛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죠.”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계절마다 변하는 나뭇잎의 색감, 그리고 자연의 리듬을 존중하며 설계에 반영했다.


“정원은 단순히 나무와 꽃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그 자체로 정원을 완성합니다.”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는 정원>

베케는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을 넘어,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정원의 도시는 곧 자연을 담는 도시입니다. 정원이 도시 속에 있어야 도시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죠.”


뉴욕 하이라인을 예로 들며 정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뉴욕 하이라인은 단순히 쉼터가 아니라, 도시전체의 정체성과 풍경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공간입니다. 베케가 제주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는 한국적인 정원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한국 정원은 투박하지만 자연스럽고, 지나치게 섬세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동양적인 철학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죠.”

정원의 끝자락에서 그는 한번 더 강조했다


“정원은 자연과 인간이 대화하는 장소입니다. 빛과 바람, 그리고 시간이 그려낸 정원이 우리의 삶에도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내가 베케를 찾은 대부분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하지만 정원은 늘 따스했고 어느 계절에 들렀는지 매번 헛갈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물회 한 그릇 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