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 2023)

나도 매일 나무처럼 초록초록 자란다.

by 여행작가드노

밀린 숙제를 해보려고 한다. 학창 시절 숙제는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 숙제는 스스로 마무리 짓지 않으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숙제 장르는 독후감과 닮은 <영화 감상문>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왔고 평소 일본 영화를 좋아하기도 해서 우연히 '퍼펙트 데이즈'를 보게 됐는데, 2023년에 개봉했지만 2025년에 접하게 되었다.


유명한 영화 평론가의 추천도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끌린 영화였다. 새해 첫날 다짐과 함께 보게 됐고, 그 여운이 너무 짙다.

놀라웠던 점은 최근 여행했던 도쿄 스미다구(Sumida City, Tokyo)와 영화 속 주인공 히라야마(Hirayama)의 삶터가 일치한다는 사실이었다.


묵었던 숙소와 히라야마가 거주하는 곳은 자전거로 5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만약 여행 전에 이 영화를 봤더라면, 영화 속에 등장한 식당, 세탁소, 목욕탕, 자전거로 건넜던 강 등을 반드시 찾아가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반가웠다.


히라야마는 시부야(Shibuya)에 있는 도쿄 올림픽(Tokyo Olympics) 당시 관광객을 위해 건축된 여러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화장실 청소는 본인도 유쾌하지 않을 것이고,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을 직업일 거다. 하지만 그의 직업을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고귀하게 묘사했다. 단순히 청소부가 아닌, 그 공간을 돌보고 유지하며 타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존재로 표현됐다.


마치 정원사 같았다.


정원 역시 사람들이 찾았을 때 아름다운 꽃과 수려한 풍경으로 가득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임없이 가꾸는 가드너의 노력이 있다. 흙을 만지며 그린썸(Green Thumb)이 되는 과정과, 비바람 속에서 소금꽃을 피우듯 고된 노동을 견뎌야만 아름다운 정원이 탄생한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단순히 화장실을 청소하는 하루가아니었다. 마치 나무가 뿌리를 내리며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듯, 그의 하루를 정성스럽게 쌓아갔다. 새벽에 마을 노인이 낙엽을 쓸 때 나는 소리에 깨어 하루를 시작하고, 반려식물처럼 아끼는 나무 묘목들을 정성스럽게 관리하며 점심시간에는 커다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독서 목록도 나무와 관련된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야생의 종려나무', 일본 작가 코다 아야의 '나무', 그리고 조카가 읽었던 '11'이라는 소설은 사춘기 아이를 묘목에 비유한 듯 느껴졌다.


삶의 모든 요소가 나무와 연결된 듯 보였다.


스미다구에서는 도쿄 스카이트리(Tokyo Skytree)가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우뚝 솟아 있었는데, 이름 또한 '하늘 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어 영화가 전반적으로 '나무'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나무는히라야마의 삶처럼 단단히 서 있는 존재였고, 주변을 위로하며 보호해 주는 느낌을 줬다.


그의 하루는 항상 자연과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다. 집 밖을 나설 때 하늘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을 자동차에서 듣는다. 그의플레이리스트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그날 하루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일과를 마친 후에는 목욕탕에서 하루를 깔끔하게 정리하며, 단골 식당에서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따뜻한 인사를 받는다.


모든 순간은 단조롭지만 빛나는 루틴의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도쿄 올림픽 홍보를 위한 화장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지만, 독일 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와 배우 야쿠쇼 코지(Koji Yakusho)의 협업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그 이상을 이뤘다. 단순히 홍보를 넘어, 일상 속의 고귀함과 작은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러한 깊은 메시지와 완성도를 증명하는 결과였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점도 깨달았다. 시작과 과정, 마무리를 정성스럽게 하고, 작지만 가치 있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영화 속 소품들도 매우 반가웠다. 필름 카메라, 자판기 커피, 카세트테이프 되감기 등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햇살이 비치는 나무 아래에서 느꼈던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코모레비(Komorebi)'는 특별한 울림을 줬다.


나무들이 가지 끝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며 서로 존중하는 모습, 수관기피(樹冠忌避, Crown shyness)의 또 다른 해석이었다.


영화는 나의 하루, 나아가 인생이 조금 더 완벽해지기를 바라는 욕심을 불러일으켰다. 상처받거나 힘든 순간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다음 일본 여행에서는 이 영화의 배경을 직접 경험하며 완벽한 하루를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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