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전란사7, 여요전쟁사>
저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최근 방영 중인 화제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담백하고 빠른 전개와 뛰어난 고증을 보며 오랜만에 잘 만든 정통 사극이 나왔구나 싶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2차 여요전쟁에서 양규의 분투는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전쟁사 서적을 집필한 작가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양규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 숨겨진 영웅이 드라마를 통해 드디어 빛을 보니 미디어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본서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집필한 <민족전란사> 시리즈 제7권, 여요전쟁사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우리 민족이 외침을 겪으며 대처했던 역사적 사실을 군사사적 관점에서 연구한 <민족전란사> 시리즈를 80년대부터 발간해왔다. 개인적으로 판단해보건대 육군의 교보재로 사용되던 도서가 아닐까 싶으나, 현재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국방부에서 내놓은 출간물이라 민간인 입장에서 불필요한 사상이나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국방부 차원에서 전문 연구자들이 내놓는 연구물, 특히 전쟁사를 다룬 서적들은 전쟁의 배경, 개별 전역 개황, 전후 결과 등의 개별적 사실만을 다룬다. 더욱이 우리나라 전쟁사는 사실상 국방부의 소관이라 봐도 좋을 만큼 신뢰할만한 양질의 자료가 가득하다. 정훈 교육 목적으로 각색한 특정 자료만 유의하면 국방부 연구 서적은 우리니라 전쟁사 공부의 보고다.
이번 자료를 읽게 된 경위는 민족전란사의 다른 편인 임진왜란사를 읽고, 그 구체성과 일목요연함에 감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주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전설적 활약, 권율과 김시민 등 업적을 세운 몇몇 특정 장수, 전쟁 초기 조선의 무기력한 대응 정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쟁의 전체 흐름을 연대순으로 차곡차곡 분류한 대중서는 사실상 전무하다 봐도 좋은데, 민족전란사 임진왜란 편은 이를 훌륭하게 해내어 임진왜란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 탁월함을 믿고 다시금 본서를 택했다. 느낀 바로는 가히 고려거란전쟁사의 교과서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내용은 어려운 편이지만 이토록 조밀하게 여요전쟁을 다룬 저작물이 있을까 싶다. 본서의 구성은 고려-거란의 전쟁 이전 배경, 고려군의 편제와 계급 체계, 거란군의 개략적인 전술 및 전투방식, 제1~3차에 이르는 여요전쟁을 소개하며 거란군의 작전 계획에 이어 고려군의 방어 계획과 지휘 편제와 세부 방어 계획 및 전황의 전체 흐름을 서술하였다.
우리 고대사가 자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듯, 중세기 고려사 자료 또한 부족하다. 태조 왕건부터 목종 시기를 다룬 역사서 ‘7대 실록’이 바로 여요전쟁 당시 거란의 개경 점령 당시 소실되었다. 그나마 보존되어온 정사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 시기에 소실되었으니 현존하는 고려의 사서는 조선 세종이 편찬한 ‘고려사’, 고려사를 축약한 ‘고려사절요’ 뿐이다.
본서에서도 자료 부족으로 인한 정밀한 상황 재현의 모자람을 아쉬워한다. 그런 한탄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모든 자료를 집약하여 여요전쟁 전체를 완벽에 가깝게 서술했다. 여요전쟁이 993년부터 1019년까지 장장 26년에 이르는 장기전이었음을, 거란과 고려의 치밀한 준비와 대응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강력한 야전군의 필요성이 뼈저리게 와닿는다. 제2차 고수전의 유명한 살수대첩, 제2차 고당전에서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당의 장수 방효태과 임아상이 이끄는 옥저도행군과 패강도행군 수만을 전멸시킨 사수 전투는 적 주력을 요격 가능한 강력한 제 부대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주요 사례다. 이는 여요전쟁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2차 여요전 당시 요군의 후방을 위협한 양규의 유격전, 요나라의 침략 야욕을 완전히 좌절시킨 귀주대첩의 빛나는 승리에서 보듯, 주력 야전군의 필요성은 우리 역사 내내 검증되었다.
여몽전쟁과 임진왜란은 위 사례와 대비된다. 조정이 강화도에 틀어박혀 본토 수비를 등한시한 여몽전쟁 시기엔 내지 백성들이 조정의 구원 없이 각자도생했다. 몽골군을 견제할 마땅한 병력조차 없는 현실에 전 국토가 몽골에 유린당했다. 임진왜란도 마찬가지다. 해전과 수성전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부실한 관군은 육상에서 적 부대를 섬멸하지 못하는 요인이었다. 이에 우리 조선 육군은 독립적인 군 운용의 어려움으로 외세인 명군에 기대야만 했다. 추위, 수전에서 거듭된 패배와 보급난, 공성전의 참담한 실패로 왜군의 공세 능력은 진작 끝장났으나 지상에서는 의병의 산발적 게릴라 외엔 왜군을 견제하지 못했다. 이는 병력 유지를 가능케 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 전까지 왜군이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끈질기게 농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몽진조차 똑바로 못 한 병자호란은 가슴이 답답하므로 생략한다.
군문을 떠났어도 여전히 전쟁사를 취미 삼아 공부하는 애호가 입장에서, 병력 부족과 관리 부실로 와해 되어가는 우리 군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요전쟁사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어 읽었는데 그 일목요연함에 매우 흡족했다. 여요전쟁 당시 우리 고려군의 전투 과정이 세세히 담긴 귀한 책이다.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